소가 에미시는 섭정으로 왜국을 통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조오메이왕을 옹립한 것도 소가였으니 왕을 압도하는 세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그 배후는 백제방의 왕자 부여풍이다. 부여풍은 의자왕의 동생으로 왜국에 건너간지 10년이 넘는다. 백제에서는 백제방을 통해 오경박사, 역박사(易博士), 력박사(曆博士), 채약사(採藥士), 악인(樂人) 등을 왜국에 보냈는데 모두 22부사에 소속된 관리들로 왜국에 백제 문화를 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소가 에미시의 조상은 1백년 전 백제에서 건너온 목협만치(木?滿致)로 나중에 이름을 소가만치(蘇賀滿致)로 바꾸었으나 백제인이다. 그 후 소가 가문은 왜왕가와의 혼인으로 왜왕의 외조부가 되었다가 장인이 되는 등 끊임없이 권력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지금도 조오메이왕에게도 소가는 누이를 보내어 비로 만들고는 섭정 노릇을 한다. 다시 성충이 말을 이었다.
“소가의 욕심이 지나쳐. 겉으로는 풍왕자께 순종하는 것 같지만 당의 밀사를 만나 군자금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어.”
성충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대륙이 전란에 싸이고 신라가 백제와 합병되는 이 시기를 노리고 있는 것 같네. 1백여 년 간 제 세력을 늘려왔으니 그런 욕심을 낼 만도 하지.”
“수단이 뛰어난 인물이야.”
흥수가 거들었다.
“김춘추보다 더 월등한 인물이니까 조심하게.”
“저한테 벅찬 인물이 아닙니까?”
계백이 묻자 성충과 흥수가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때 흥수는 입을 다물었지만 나이가 위인 성충이 계백을 보았다.
“이보게, 은솔.”
“예, 대좌평 대감.”
“내가 나이 50이 넘으면서 느낀 점이 있네.”
“예, 듣겠습니다.”
“지금 백제, 고구려, 신라, 왜, 당, 이 5국(國) 중에서 누가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될 것 같은가?”
“백제올시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대백제(大百濟)는 대륙에 22개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데다 이제 곧 신라를 병합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동쪽의 왜국을 오래전부터 속국으로 삼아 백제계인 왕과 대신들이 왜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백제방으로 왜국 왕실과 함께 통치를 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백제가 가장 유력합니다.”
“그렇지. 다 그렇게 믿네.”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성충이 길게 숨을 쉬었다.
“이보게, 은솔.”
“예, 대감.”
“난세에는 어느 한 사건이 대세를 흔들 수가 있다네.”
흥수와 눈을 맞춘 성충이 말을 이었다.
“혼란한 시기일수록 그 가능성이 많다네. 태원유수 이연이 당 태조가 되리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그놈 아들 이세민의 지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라고? 아닐세.”
그때 흥수가 말을 받았다.
“시(時)와 운(運)이 맞았기 때문이지.”
어깨를 부풀린 흥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대왕께 시(時)와 운(運)을 갖다 드려야 하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때 성충이 말을 잇는다.
“작은 사건들을 인연으로 이어줘야 하네. 그래야 우리 대왕이 운을 잡으시네.”
그러자 계백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대감들은 충신이시오,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