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마을과 장점마을

70대 노 부부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아내는 모두 암환자였다. 암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부부는 이들 뿐이 아니었다. 어떤 부부는 1년 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떴고, 어떤 부부는 2~3년 동안 서로에게 의지해 암과 싸우다가 작별했다. 모두 한 마을 주민들이었다.

45가구에 주민 80명이 사는 작은 마을. 이들 중 26명이 암에 걸려 이중 15명이 이미 사망했다면 이런 공포가 따로 없다. 익산 함라면의 장점마을 이야기다.

주민들에게 찾아온 암 공포는 2000년대 초반, 마을 인근에 비료공장이 들어선 이후부터였다.

어느 날 마을 저수지에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뿜어대는 연기가 산을 넘지 못하고 마을로 밀려들면 악취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어느 사이에 암환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주민들은 비료공장의 매연을 주목했다.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2010년에는 암투병 환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 10여 년 동안의 투쟁 끝에 지난해 비로소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최근 발표된 중간보고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센터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청정지역보다 최대 5배 검출됐다. 주민들의 우려가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집단 암 발병의 공포를 몰고 온 마을은 또 있다. 남원의 내기마을이다. 주민등록상 거주자 50여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서도 2009년부터 폐암 식도암 방광암 판명을 받은 암환자가 12명에 이르렀다. 섬진강 유역에서 가장 넓은 들판을 안고 남향으로 앉은 내기마을은 예부터 터 좋은 마을로 꼽혔다. 6.25때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인데도 전사자 한명 나지 않았던 것도 좋은 터에 마을을 세운 덕이라고 여겨왔을 정도다. 그러나 내기마을 역시 마을 주변에 들어선 아스콘공장이며 채석장, 한국전력의 대규모 변전소와 고압 송전탑이 원인을 가져온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들 모두가 유해물질을 방출하는 시설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역학조사 결과 지하수에서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기준치의 최고 26배에 이르는 양이 검출됐고 이어진 정밀역학조사에서는 ‘이 마을의 집단 폐암 발병이 반경 500m 안에서 운영 중인 아스콘 공장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인 규명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늦춰진 결과는 잔인하다. 두 마을의 비극과 불행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