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웃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점하나에 울고 웃는다 아아아 인생…. 김용임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부른 <도로남> 의 앞부분이다. 도로남>
어디 ‘점 하나’뿐이랴. 받침만 빼도 ‘남’하고 ‘님’ 만큼이나 뜻이 달라지는 옛말이 몇 개 있단다. ‘인명재천(人名在天)’의 ‘천(天)’에서 ‘ㄴ’을 빼보라. ‘처(妻)’가 된다. 언필칭 ‘인명재처(人名在妻)’다. 세상 남자들 목숨은 처, 즉 여자가 쥐고 있다는 것. 점 하나에만 울고 웃는 게 인생사일까. 받침 하나에도 실컷 웃프고도 남는다.
무릇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이라 했으니 혼신의 노력을 다한 뒤 아내의 처분을 기다릴 일이다. 물심양면으로 온갖 정성을 기울여도 아내 한 사람 감동시킬 수 있을까 말까다. ‘지성(至誠)’해서 ‘감처(感妻)’하게 만들 줄 아는 남자라야 비로소 ‘처하태평(妻下泰平)’도 바랄 수 있을 터, 이쯤 되면 ‘처(妻)’야말로 ‘천(天)’하고 동급이라는 데 세상 어느 남자가 감히 이의를 달 수 있을까.
떠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로 남자가 말을 잘 들어야 할 여자는 또 있다. 전지전능하신 ‘그분’처럼 늘 바른길로만 인도해주시는 차 안의 그 ‘내비’ 양이다. 여자 말 안 듣고 길을 잘못 잡았다가 귀한 시간 허비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깟 기름값 좀 아끼자는 말일 리도 없다. ‘사필귀처(事必歸妻)’라서는 더욱 아니다.
함께한 지 벌써 십수 년인데도 그 목소리가 한결같아서다. 어쩌다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도 불같이 화를 내기는커녕 인상 한 번 찌푸리는 법 없어서다. ‘행(行)’은 몰라도 ‘언(言)’ 하나는 더없이 나긋나긋해서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