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193) 10장 백제방 왜국 9

왕실의 사신이 여왕의 즉위를 통보했을 때 소가 이루카가 먼저 옆에 앉은 아버지 소가 에미시를 보았다. 오후 신시(4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니 그 시간의 왕실에서는 여왕과 풍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었다.

“여왕이 즉위하셨단 말이지?”

에미시가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사신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루카의 저택 청안이다. 청에는 가신(家臣) 50여 명이 정연하게 늘어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예, 백제방의 풍왕자께서 대관식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이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왜왕 즉위식에는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 주관해왔다.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야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왜왕이 백제계가 된 지 2백여 년, 그것이 관습이다. 대관식에 결격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루카는 외면했다. 경축한다는 말도 아직 뱉지 않았다. 그때 에미시가 말했다.

“여왕께 축하드린다고 전해주게. 소가 가문이 충성을 다해서 여왕을 모시겠다는 말도 전해주게.”

“예, 대감.”

“그리고 곧 소가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 드릴 것이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대감.”

에미시는 72세, 30여 년간 섭정을 지내다가 3년 전 이루카에게 섭정직을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정정하다. 사신이 청을 나갔을 때 에미시가 둘러앉은 가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가 섭정과 둘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

거침없다. 가신들이 두말 못하고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이 나간 청에는 둘만 남았다. 검게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끝 쪽에 경호무사 둘이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때 에미시가 주름진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이루카를 보았다.

“어젯밤에 서문사 앞에서 풍왕자 일행을 쳤느냐?”

“그런 일 없습니다.”

거침없이 대답한 이루카가 똑바로 에미시를 보았다.

“요즘 백제방의 풍왕자와 갈등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제 뿌리를 파헤치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그렇다면 신라방 놈들이군.”

에미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김춘추 족속들의 교활함은 가끔 제 위주로 사물을 판단하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놈들은 현장에 우리 가문이 찍힌 갑옷조각, 허리띠를 두고 갔다. 우리가 풍왕자를 기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까?”

놀란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저는 풍왕자 일행이 요즘 아스카에서 돌아다니는 야적들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연못에서 키운 고기 밖에 안 되는 거야.”

눈을 부릅뜬 에미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척 단구였지만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이루카는 숨을 죽였다.

“지금 당장 중신(重臣)을 보내 풍왕자에게 어젯밤의 일을 해명해라. 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그 편지도 갖고 가도록 해라.”

“예, 아버님.”

얼굴을 붉힌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그리고 당장 군사를 보내 신라소를 몰살시켜 버릴까요?”

“놔둬라.”

에미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것은 백제방의 처분에 맡기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