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이 아스카에 도착했을 때는 왜왕 즉위식이 끝난 지 닷새가 지났을 때다. 전선(戰船) 3척에 3백 정예군을 싣고 도착한 계백은 백제방으로 들어가 풍왕자에게 신고를 했다.
“은솔 계백이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잘 왔어.”
풍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계백을 맞는다. 손을 들어 앞쪽 두 걸음 거리에 계백을 앉게 한 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로만 듣던 용장을 보게 되는구나.”
“황공합니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밝은 분위기다. 모두 계백의 명성을 들어 아는 것이다. 몸은 왜국에 있어도 수시로 본국에서 오는 쾌선의 전령과 오가는 사신을 통해 정세를 듣기 때문이다. 풍은 의자의 동생으로 38세, 왜국 생활이 10년이 넘은 데다 전에는 대륙의 담로에서 태수를 지냈다. 견문이 넓고 역사에 밝다. 풍이 입을 열었다.
“은솔, 그대는 역사(歷史)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전하.”
그러자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지금은 대륙과 본국은 물론 왜국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명장(名將)이지만 훗날 네 기록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알고 있느냐?”
“예,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승자에 의해 조작되고 묻혀 버린다. 멸망한 왕조는 악(惡)이 되고 정복한 지배자는 선이다.”
“예, 전하.”
“명심해라. 대백제의 지금 융성이 잘못되었을 때는 온갖 조작으로 덮어씌워 질 것이니.”
“예, 전하.”
“그때에는 네 명성도 죽을 때 한두줄의 기록으로만 남겨지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어깨를 편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교활하고 비굴한 악인의 손에 역사를 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면서 쾌선 전령에게서 들었습니다만 백제방 관인들이 습격을 당한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풍의 눈빛이 강해졌고 둘러앉은 중신들도 숨을 죽였다. 숨을 고른 풍이 입을 열었다.
“신라소의 김부성이 나를 치려고 한 것이다. 덕솔 진겸과 수행원이 나 대신으로 몰사를 했다.”
“소가 가문에 혐의를 씌웠다고 들었습니다만.”
“소가가 권력욕이 강하나 백제인이다. 백제를 등질 위인은 아니다.”
“먼저 신라소를 쳐서 몰사를 시키지요.”
“여왕께서도 나한테 맡기셨다.”
정색한 풍이 말을 이었다.
“김부성도 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풍의 시선이 옆쪽에 앉은 덕솔 윤환에게로 옮겨졌다.
“덕솔, 네가 말하라.”
“예, 전하.”
40대쯤의 덕솔 윤환이 계백과 풍의 중간쯤에다 시선을 두고 말했다.
“김부성은 신라에 우호적인 호족들로부터 용병을 얻었습니다. 지금 신라소 근처에 모인 용병이 5백명 가깝게 되어서 민심이 흉흉합니다.”
그때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놈들은 소가 가문에 뒤집어씌우려던 혐의가 발각되자 발악을 하는 것이다.“
김부성은 신라에서 김춘추가 실권자로 부상하자 용기도 일어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