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에서 보면 사실 중국이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뒤쳐진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아니다. 대략 4000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융성한 시기를 꼽는다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청(淸)나라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3대 130년간이다. 청나라 제6대 황제인 건륭제 집권 시기(재위 1735~1795년) 청나라는 세계 산업 생산액의 33%를 차지했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청이 만들어놓은 제국의 판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한반도의 약 44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성세도 산업혁명기를 계기로 해서 크게 기울면서 청나라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서구세력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을 겪게된다.
한 세기가 훨씬 넘는 치욕끝에 오늘날의 중국이 절치부심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은 한마디로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이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던 덩샤오핑이 펼친 경제 정책으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다는 의미다.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을 잘살게 하는 실용주의 정책이 최고라는 거다.
덩샤오핑의 결단이 오늘날 중국의 번영을 가져왔다고 볼때 지도자의 역량은 참으로 중요하다.
선거때마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서울TK, 지역TK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총선을 1년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자유한국당이 요즘 본격적인 인적쇄신에 나서면서 당협위원장 교체폭이 주목되는데 역시‘서울TK냐, 지역TK냐’하는 논쟁이 없지 않다고 한다.
서울TK는 대구·경북 출신이지만 자신의 이력을 중앙에서 꽃피우고 성장한 인물을 말하며 지역TK는 경력의 대부분을 지역에서 쌓아온 토착리더를 의미한다.
선거철이면 중앙무대에서 화려한 이력을 쌓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당선되면 여의도로 가거나, 낙선하면 아예 생활근거지인 서울로 가버리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서울TK, 지역TK라는 말이 생겼다. 서울TK는 상대적으로 명망가인데다 이력이 화려한 반면, 지역 리더들은 중량감은 좀 떨어지지지만 생활현장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호흡하는데 능수능란한 측면이 있다.
도내에서도 도의원이나 시장, 군수 정도 지낸 이력을 갖춘 사람이 요즘에는 왕왕 국회의원으로 진출하고 있다. 사실 서울TK, 지역TK 논쟁은 구태의연한 것일뿐 주민들은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가리지 않고 쥐 잘잡는 고양이를 원할 뿐이다. 도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