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엽서 한 장-이제 버릴 것은

최상영

모진 가뭄도 가뭄이지만

내 몸 추스르기도 힘든 유월

가진 것도 든 것도 모자라기만 하고

이제 버릴 것은 시집 몇 권과 잡동사니

너절한 묵은 서가가 전부인데

정작 버려야할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서어한 욕망의 굴레일는지.

겨우 가뭄 달래는 마른 장맛비가 찔끔거리는

후텁지근한 오후

더 내려 놓은 것은 없나 뒤적여 보는

헌책 갈피에 끼워 있는 청년시절 받은

엽서 한 장

- 허접한 나의 청춘은 잔돌평 철쭉 빛으로

불타고 있어도 내 영혼 불 지필 불쏘시개 감으로라도

이승에 남을 것인가

소나기 한 줄기

넓은 잎 오동잎에

후두둑 걸어오는

유월 마지막 날

△생의 가뭄에 들어섰다. 윤기 나고 화려했던 젊음은 어디로든 벋어나갔으나 이젠 가뭄만 타는 고비에 접어든 것이다, 간혹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가뭄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버릴 것 다 버렸는데도 아직 시집 몇 권과 연필 몇 자루는 가지고 있다. 청춘은 철쭉 빛으로 타올랐으나 내 영혼에 이글거리는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을 것인가? 사위어 가는 재를 다독여 주는 소나기 한줄기가 말라가는 오동잎을 건드린다. 김제 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