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만남

안규백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갑·더불어민주당)

안규백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갑·더불어민주당)

창문을 열면 어느덧 찬바람이 양쪽 볼을 스쳐갑니다. 이 공간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처음으로 만난 때가 지난 7월 중순이니 벌써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도 4개월이 넘어갑니다. 처음 글을 쓸 때의 더위가 눈에 선한데 벌써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습니다.

가을이면 단풍을 즐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거나 가까운 산책로를 거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매년 국회의 가을은 계절의 변화를 즐길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국회의 메인이벤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국정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초입부터 늦가을이 마무리될 즈음까지 국정감사는 1년의 한 계절을 온전히 들어냅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8년부터이니, 벌써 11년째 가을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셈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이 가을의 정취마저 없애지는 못합니다. 고즈넉한 명산고찰의 단풍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붉게 물든 동네 산기슭과 제법 서늘한 아침 바람이 함께하면 어느새 가슴은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립니다. 옛 사람들이 가을을 예찬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그럴듯한 관광지나 이름 높은 명승고찰의 화려함보다도 일상 속의 서정이 사람을 일깨우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만남의 계절입니다. 비단 연인뿐 아니라, 오래 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거나 동문회, 동창회 따위의 모임을 하고자 해도 가을만한 계절이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역시 만남의 역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아난이 석가를, 그리고 안회가 공자를 만남으로써 인류는 새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우리 인간의 개인사도 끝없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만들어 갑니다. 가을이 왔다는 말의 어미가 끝나기 무섭게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계절 앞에 여러분은 어떤 만남을 이어가고 계십니까?

국회의 가을 역시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부부처나 피감기관과 국회의 만남, 국회의원 사이의 만남 등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국회와 국민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도 만남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의미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한편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도 기록될 만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지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이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그리고 백두산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의 의지를 확인하고,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이러한 사실을 알린 것 역시 가을이었습니다. 만남의 계절 가을이 만든 마법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을은 만남을 통해 결실을 이루고, 이를 수확하는 계절이지만, 저물어가는 한 해를 느끼고 성숙한 정신세계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는 비단 단순한 시간의 나열만은 아닙니다. 만물이 생동하고 사멸하는 거대한 인과율의 기반이 바로 시간의 흐름이고, 환경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넘실대는 여름의 생동감과 고요한 겨울의 정적 가운데에서 자신을 관조하고 세상을 사색하는 최적의 계절입니다. 우리 선조들에게도 높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가득한 우리 가을은 사색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국정감사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시나 올해도 국회의 가을은 국정감사와 함께 저물어갑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정부를 감시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아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창밖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전북일보 독자 여러분과의 만남을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을이 누구보다 더 풍성한 계절이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