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지켜야 할 양심

신팔복

오늘은 모처럼 모악산을 갔다. 산은 혼자 오르는 길도 좋지만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것도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산이 주는 정서와 자연의 감성은 인생의 참맛을 더해준다. 제철을 맞았던 단풍들은 다졌지만 아직도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이 스산한 바람에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등산길에는 자연을 사랑하자든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여러 개의 리본이 바람에 나불댄다. 좋은 말이다. 헐벗은 산을 가꿀 때 온 국민이 나무 심기에 동참했고 관심을 가지고 숲을 가꿔왔다. 꽃샘추위가 몰려와도 식목행사는 어김없이 이뤄졌다.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가꿔진 것이다. 앞산도 점점 물이 들어간다. 우리의 산하는 이제야 겨우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 가듯 우리의 자연환경도 잘 보호하고 가꿔나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일부 양심을 버리는 얌체족이 있어 안타깝다. 한마디로 꼴불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한심하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다. 산 정상에 올라 자연을 벗 삼아 먹는 점심은 어느 요리 집 음식에 비하랴. 그런데 문제는 먹고 남은 빈 병이나 깡통, 과자봉지, 음식물 찌꺼기, 휴지 등을 함부로 버려 자연을 훼손하고 있어 볼썽사납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생활 쓰레기들이 나 몰라라 방치되고 있다. 적어도 자기 쓰레기는 되가져가 분리해서 수거하고 쓸 만한 물건은 재활용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가 깨끗하게 보존해야할 아름다운 산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각종쓰레기들로 인해 ‘자연경관’이 병들어가고 있다. 조그만 양심이 남아있다면 버리지 말고 배낭에 넣어 가져가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의 양심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연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는 결국 좋은 경관을 망치고 금수강산을 썩게 할 뿐이다.

작년에 아들이 사는 캐나다에 갔을 때 아내와 밴프 공원을 관광했었다. 그런데 그 어디도 오염되지 않고 맑고 깨끗한 환경들이 보존되어있어 참으로 부러웠다. 선진국의 면모가 보이는 관광지였다. 지금도 그 아름다운 경관이 잊히지 않는다.

모악산은 우리에게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해주고, 맑은 공기도 제공해주고, 자연의 소리도 선사해주는 등 우리의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무의식중에 버린 쓰레기들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최소한 각자가 가지고 간 쓰레기는 가지고 오는 작은 실천이야 말로 우리의 등산길과 문화유산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양심을 버린 꼴불견은 주택가에서도 볼 수 있다. 감시카메라도 무용지물이다. 전봇대 밑에 슬쩍 버린 쓰레기는 누가 치워줘야 하는가. 환경미화원들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다.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살기 좋은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은가. 실천하는 양심으로 버려진 물병을 배낭에 담았다.

‘비록 쓰레기를 버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 그 반대편에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쓰레기를 줍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으면 모악산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며 지나간 수많은 역사가 숨 쉬는 모악산에 보답하는 것보다 얻어가는 것이 더 많아 고마운 시간으로 내 마음 속에 남는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