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유민을 먼저 규슈의 남쪽에서부터 기반을 굳히기 시작하여 차츰 동진(東進)했는데 왜인(倭人)들에게는 선진화된 문명을 전해주면서 지방 호족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왜국(倭國)의 영주, 호족 대부분은 백제계다. 왜국의 왕실도 수백 년 전에 도래한 백제계일 뿐만 아니라 왜국의 섭정 소가 가문도 백제계이고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였으니 백제방(百濟方)은 왕실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담로의 하나다. 백제는 대륙을 포함하여 왜국까지 22개의 담로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백가제해(百家齊海)란 말에서 국명(國名)이 만들어졌다. 봄, 3月, 백제방 직할 영지의 거성(居城) 이쓰와(五和)성의 청에서 영주 계백이 중신들에게 말했다.
“기마군 장비가 너무 무겁다. 오늘부터 기마군의 말에는 안장과 가슴 가리개만 붙이고 다 떼도록 해라.”
중신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수군거렸다. 왜국의 기마군은 장비가 대단했다. 머리에 쇠 투구를 씌워 눈과 입만 내놓게 했고 투구에 거대한 황소 뿔을 붙이기도 했다. 말 목에도 갑옷을 덮었으며 가슴은 물론 엉덩이와 배까지 사슬 갑옷을 늘어뜨려 말 갑옷 무게만 20관(90㎏)이나 되었다. 거기에다 기마군의 갑옷도 엄청났으니 말이 사람 넷을 태우고 달리는 셈이었다. 계백의 백제 기마군은 경장에 말 갑옷도 가슴에 가죽만 붙인 것이어서 백제 기마군의 속도는 왜국 기마군의 2배가 되었다. 그때 계백의 장수가 된 슈토가 말했다.
“주군, 그렇게 되면 적의 화살에 당하게 됩니다. 기마군이 궁수들에게 밀릴 수가 있습니까?”
“빠른 기마군은 화살을 피할 수가 있는 법, 궁수 무서워서 기마군을 뭍에 올라온 거북이로 만들 수는 없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장 오늘부터 말 갑옷을 떼고 기마군 갑옷도 가슴만 가리고 다 떼어라.”
계백의 시선이 하도리에게 옮겨졌다.
“하도리, 네가 감독관이 되어라.”
“옛.”
“기마군은 기습과 속도가 생명이다. 근접전은 보군한테 맡기고 기동력을 향상시켜야만 한다.”
계백이 다시 슈토에게 말했다.
“슈토, 네가 내 영지의 기마군 대장이다. 하도리와 함께 기마군을 재편성하라.”
“옛.”
슈토가 청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계백 영지의 기마 대장이면 중신(重臣)이다. 슈토는 새 영주의 중신이 된 것이다. 이제 계백령에는 질서가 잡혔고 군사 5천여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도 갖췄다. 평시에는 영지 50석당 군사 1명으로 계산해서 계백령에서는 6900명을 낼 수 있지만 계백령은 소출이 많고 인구도 많아서 2만까지 병력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 마당에서 말굽 소리가 울리더니 위사가 먼저 뛰어 들어와 보고했다.
“주군, 백제방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계백이 머리만 끄덕이자 백제방의 관원인 장덕 목기수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영주께 인사드리오.”
“오, 장덕 왔는가?”
“방주 왕자 전하께서 말씀 전갈입니다.”
“말하라.”
“본국에 간 덕솔 백종이 먼저 왕자 전하께 전령을 보냈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목기수가 말했다.
“은솔께서 이번에 달솔로 품위가 오르셨습니다.”
“허어.”
계백이 놀란 외침을 뱉었을 때 청안의 모든 중신들이 엎드려 치하했다.
“주군, 감축드리오. 경사입니다.”
이제 계백은 제2관등인 달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