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言以信(믿음 있게 말하라) 行己以潔(깨끗하게 행동하라) 御家以法(법도 있게 집안을 이끌어라)…증자가 말하기를 “새가 죽으려 할 때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하다”라고 하였다. 아아! 내가 장차 죽게 되어 하는 이 말이 헛되지 않는다면 생사에 아무런 유감이 없겠다. -경술년 시월 상순 늙은 할아비가 보도산실에서 쓰다.
보정 김정회(1903~1970) 선생이 손자인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에게 남긴 유훈이다. 전북의 선비인 보정 선생은 명륜전문학원(성균관대 전신)에 들어가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북학 등 신구 문물을 두루 탐구하는 한편, 해강 김규진 화백을 사사해 서화에서 일가를 이뤄 시서화 삼절이라 불리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에 환멸을 느끼고 귀향해 도산서당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은거했다.
보정 선생이 타계한 뒤 8년만인 1978년 지기와 문우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유고문집 <연연당문고> 를 출간했지만, 모두 한문으로 돼 있어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후학들은 그의 학문과 예술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김 소장은 대학강단에서 정년퇴직한 뒤부터 조부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2019년 완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보정 김정회 선생 시집 <梅妻(매처)를 찾아가네> (감수 연정 김경식, 번역·주해 호당 이정길)이다. 梅妻(매처)를> 연연당문고>
이 한글 번역본은 보정 선생이 쓴 260여 수의 시(詩)와 장문인 2편의 부(賦)로 돼 있다. 시의 주제는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백미는 금강산 절경을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 연작시 23수(69~92번)이다. 전체적으로 먹물이 화선지에 배어들 듯 가슴으로 스며드는 한시의 운치가 느껴진다.
김 소장은 “조부의 문집이 발간된 지 40년 만에야 비로소 그 일부분인 시부편의 한글번역본을 내게 되었으니 스스로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며 “조부의 지극한 가르침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심정으로 유고문집 <연연당문고> 한글번역본을 완간하는 일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연당문고>
고창 출신인 김 소장은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장대에서 정년퇴직했다. 1997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