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자신의 업적이나 공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돼 있다. 양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을 널리 떨친 사람치고 묘비명을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다. 묘비명은 대부분 사자의 혼이 담겨있다.로큰롤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을 때, 또 위대한 록밴드로 인정받는 ‘비틀즈’의 존 레넌이 죽었을 때 당시 언론은 ‘King Is Dead’와 ‘Music Is Dead’라고 썼다.재치가 넘치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반년전 타개한 김종필 전 총리도 스스로 상당히 긴 비문을 지었는데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이다.사악함이 없는 생각이라는 의미인데 과연 실제 JP의 삶이 사무사 였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법 하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 최초의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는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많으므로 비석 하나에는 다 기록할 수 없을 테니 그저 아무 것도 새기지 말고 비워 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측천무후의 무자비(無字碑)는 실로 방자하기 그지없다. 오랜 역사속에서 어떤 이는 업적을 돌에 새기고, 또 어떤 이는 쇳물을 녹여 온갖 미사여구로 담아냈으나 그 누구도 변화무쌍한 세월과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기 일쑤였다.
며칠전 470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막판 의결과정에서 당초 정부 예산안에도 없었으나 신규로 증액된 쪽지예산이 무려 100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소위 실세 정치인으로 꼽히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미래당 원내대표, 안상수 예결위원장, 장제원 한국당 예결위 간사, 조정식 민주당 예결위 간사 등의 이름이 도하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뚜렷한 명분만 있다면 국회의원이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예산을 확보한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런데 내후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별다른 실적도 없는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나서서 쪽지예산을 확보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은 볼쌍스럽다. 심지어 일부 시장 군수는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고서도 반성문을 쓰기는 커녕,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일부 지방의원도 국회 쪽지예산을 그대로 답습해 뽐내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묘비명을 단단한 돌에 끌로 새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상이 이럴진대 지금의 위정자들이 앞으로 어떤 비문을 스스로 지어서 후세에 남길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