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국의 거의 모든 형무소에서 자행됐다. 1960년 국회 양민학살진상특별위원회가 경남북과 전남, 제주지역에서 현지조사를 벌여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부산형무소에서 4832명, 마산형무소 1682명, 대구형무소 1402명 처형된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민간인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은폐 되면서 그 전모가 지금껏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전주형무소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역시 마찬가지다.‘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이 공개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도 겨우 3년 전이다. 이인철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 대표 주도로 마련된‘6.25 전주형무소 민간인 희생 규명을 위한 연구포럼’을 통해서다. 퇴각하던 북한군이 1950년 9월25일부터 나흘에 걸쳐 500여명을 피살했다는 내용이 여기서 보고됐다. 그 해 9월 전주 효자공원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전주형무소의 비극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북한군의 전주 점령 이전에 많은 민간인들이 한국 군경에 의해 살해됐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또 다른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이 알려진 것은 경상대 신경득 교수가 쓴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2002년)이란 논문 속 전주형무소 관련 기술을 통해서다. 1950년 6월26일부터 전주함락 시점인 7월20일까지 정치범과 보도연맹원 등 4500명(과거사정리위원회는 1600명으로 추정)에 대한 4차례의 대량 학살이 있었다는 것이다.

월간 <말> 은 2003년 유가족과 당시 교도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신 교수의 논문을 뒷받침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형무소(진북동)에서 남쪽의 시내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옛 공동묘지와 건지산, 황방산, 소리개재 등이 학살 장소로 선택됐다고 <말> 지는 전했다.

전주시가 북한군과 우리의 군경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저 전시성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진상 규명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혼과 유족들의 상처를 진실로 보듬는 길이며,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