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수를 놓는다 - 김은주

오늘도 임실댁은 수를 놓는다

오색 비단실을 바늘에 꿰어

한 땀 한 땀 도안을 따라간다

초가집 길 어느 모퉁이

버드나무 아래 돌아갈 때

아름다운 화초도 한 폭 보이고

모란은 꽃 피고 나비는 춤추는데

꾀꼬리 고운 소리는 아직 수틀 속에 없는 듯하다

문득 지나온 길 뒤돌아보면

손끝에 빨간 핏방울 아프게 맺히기도 했고

흙먼지 바람이 불어 보푸라기도 일어났는데

마음은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어두운 길을 벗어나고자 한다

설계한 도안을 따라가며

바늘 끝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숨 쉬는 길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임실댁은 오늘도 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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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실을 바늘귀에 겁니다. 비록 지금껏 살아온 길이 비단길이 아닐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이 비단길이라는 보장은 없어도 한 땀 한 땀 수를 놓습니다. 아름다운 화초도 내 삶의 귀퉁이를 밝혀주고, 모란 나비도 불러다 앉힙니다. 아직 꾀꼬리 우짖는 화려한 길은 아니지만, 손끝마다 핏방울 맺히지만, 바늘 끝을 따라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수틀을 뒤집어 봅니다. 매듭자리를 이어 별자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온 내 삶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별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김제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