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선정 2018 올해의 전북인] 육상선수 전민재 “힘들어도 희망의 끈 놓지 마세요”

육상 입문 16년…전국장애인체전 ‘15년 연속 3관왕’
아시안게임·패럴림픽서 메달, 전북의 명예 드높여
몸 불편해도 희망 잃지 않고 해마다 자신과 싸움 계속

전북일보 기자들이 투표한 2018년 올해의 인물로 장애인 육상의 간판스타 전민재 선수가 선정됐다. 전국체전 15년 연속 3관왕. 아시안게임과 패럴림픽 메달리스트인 전 선수를 지금껏 올해의 전북인으로 선정하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육상에 발을 내디딘 지 16년, 그리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13년. 자신을 위해, 도민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뛴 그의 지난 16년을 돌아본다. 그의 발언은 메시지로 진행한 인터뷰와 그의 어머니 한재영 씨와의 대화를 통해 이뤄졌다.

 

△ 늦었지만 치열한 시작

1977년 진안에서 태어난 전민재 선수는 5살 때 뇌염을 앓은 뒤 뇌성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사춘기를 보내다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하고 열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발로 글씨 쓰기를 습득했던 전민재는 학교에서 펜 대신 붓을 들었다.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육상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2003년 동암재활학교 2학년 당시 지금도 인생의 은사로 여기는 김행수 교사를 만나며 육상을 시작했다. 김 교사는 전민재가 달리는 것을 보고 재능을 알아봤고, 함께 훈련을 진행해 그해 열린 장애인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해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단번에 이룬 성과였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뒤늦게 육상을 시작한 탓에 다른 선수보다 몇 배로 노력해야 했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조깅, 식이요법 등 자신만의 훈련 시스템을 만들었다. 계획표도 스스로 만들어 실행할 정도로 노력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딱딱한 운동장을 뛰다 발톱이 다 빠져 푹신푹신한 땅을 찾아다녔다. 고추 농사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고추밭에 나가 고랑을 뛰며 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민재에게는 아무리 훈련을 해도 극복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작은 키가 그것이다. 100m와 200m 단거리가 주종목인 그는 과거 결승선을 간발의 차이로 뒤처져서 통과할 때 ‘다리가 길었으면 키가 큰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1위를 할 수 있을 텐데’라는 미련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키가 큰 다른 선수를 제치기 위한 비책으로 스타트를 연습하며 좀 더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연습했다.

뇌성마비 장애와 149cm의 작은 키, 그리고 선수로서 늦은 나이라는 어려움은 그녀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노력의 보상, 화려한 기록

그의 치열했던 노력은 화려한 보상으로 돌아왔다.

육상 1년 만에 2004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관왕 차지를 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올해 안방인 전북에서 열린 제3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까지 15년 연속 대회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국내 대회에서는 적수가 없던 그는 세계 속에서도 빛났다.

2006년 국가대표가 된 후 2008년 처음 나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아쉽게도 메달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4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엿봤다.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며 국제대회 첫 메달을 가져왔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도 은메달 2개로 국내·외 육상 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첫 메달리스트가 됐다. 2013년에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IPC(국제패럴림픽위원회) 세계선수권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기량을 뽐냈다.

그랬음에도 그에게는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다. 바로 모국에서 열리는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일이었다. 전민재는 대회에 앞서 2개의 금메달을 공언했고, 보란 듯이 실현했다. 대회에서 200m를 여유 있게 우승한 전민재는 100m에서 15초60을 기록해 2위였던 일본의 가도 유키 선수를 0.07초 차 앞서며 대회 2관왕을 차지했다.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도 100m와 200m를 동시에 제패하면서 2회 연속 장애인아시안게임 2관왕을 차지했다. 또 39세라는 나이에 출전한 2016 리우 패럴림픽에서도 전민재는 여자육상 200m에서 31초 06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민재의 진심과 염원

전민재는 육상이 좋은 이유로 ‘달릴 때 만큼은 아무 잡념 없이 달릴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특히 육상을 권유한 김행수 교사에 대한 고마움도 말한다. 그는 “육상을 권유하고 가르쳐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 평생의 은인”이라며 “앞으로도 고마움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계속 달릴 수 있도록 꾸준하게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이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 본격적인 훈련은 대한장애인체육회 소속 이천훈련원에서 진행하지만, 훈련원 입소 전에는 전북체육회 지원을 통해 코치와 훈련한다. 실업팀이 없기 때문에 코치가 없을 때는 집에서 혼자 훈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훈련이 가끔 지치고 힘들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훈련한다”고 말한다.

또 전민재는 지난 15년 동안 정상을 달린 장애인육상계의 레전드로서 국내 대회의 엷은 선수층과 열악한 저변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올해 열린 T36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5명뿐이다. 그는 “올해는 그래도 많이 나온 편”이라며 “함께 출전하는 선수가 조금밖에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등급 선수가 많이 나와 경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해외 경기에서는 경쟁하는 선수가 많다 보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경쟁의식도 생기고, 기록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며 “국내에서는 선수가 몇 명 없으니까 경기에 대한 의욕이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장애인 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인식 개선과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 올해의 전북인 그리고 그의 미래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또렷이 밝혔다. 그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는 은퇴하려고 하는데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나가려고 생각한다”며 “2022년까지 기록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도전하는 자세로 아시안게임까지 도전해보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의 전북인 선정에 대해 감사 인사와 함께 도민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전민재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노력해서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기록으로 보답하고 싶다”며 “올해의 전북인으로 뽑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에는 언니와 작은 카페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도민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마음도 전했다.

“몸이 불편한 저도 희망을 품고 매년 저와의 싸움과 도전을 하고 있으니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열심히 노력하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