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새해 특집] 전북의 길, 길에서 미래를 찾다 - (1) 전주 객리단길·웨딩거리

임대료 싼 곳 찾아 점포 이동 ‘객리단길’형성
웨딩거리, 다양한 문화활동 예술의 거리로 변화

‘길’ 길은 이동 수단이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고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통수단이자 방도를 나타내는 길, 행위의 규범이라는 의미까지 길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길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상징이 스며있다. 우리가 길이라 말할 때 물리적인 길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앞날이나 인생, 미래 같은 의미를 떠올리기도 한다. 전북일보가 이처럼 길을 다루기로 한 것은 그런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주고 싶기 때문이다. 길은 사람을 바꾼다. 사람은 공간을 바꾸고 그 공간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사람이 오가는 곳마다 길이 만들어지고 길은 또 사람을 불러들인다. 길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시킨다. 전북의 길을 통해, 전북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우리 삶의 터전인 전북의 길을 더듬어 보는 것은 전북이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동시에 살펴보는 일이며, 전북이 확장해온 역사를 되짚어 걸어보는 일이 될 것이다. 전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새롭게 생겨난 길부터 시·군 곳곳의 특색있는 둘레길과 골목길까지.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돼 도심의 모습을 변화시킨 길에 대해 알아본다.

△쇠퇴한 전주 객사길이 ‘객리단길’로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한옥마을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북적인다. 한옥에 더해 전주를 대표하는 먹거리인 전주비빔밥과 가맥(가게 맥주), 콩나물국밥 등이 주는 이미지는 옛것이라는 의미가 강해 전주는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최근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핫’ 한 새로운 거리가 생겨났다. ‘객리단길’이다.

몇 해 전부터 전주 ‘객사’와 서울의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을 합해 ‘객리단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전주 객리단길

탄생부터 살펴보자면, 전주의 원도심인 중앙동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현판이 걸린 옛 건물이 있다. 보물 제583호인 전주객사의 본관이다. 객사는 지방으로 출장 온 관원이나 외국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전주 객사 인근 ‘전주객사4길’과 ‘전주객사5길’이 있는데 다양한 옷가게와 액세서리점, 음식점 등이 즐비한 번화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전주 영화제작소 인근 ‘전주객사3길’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이들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이다 보니 당연히 가게 임대료는 올라갔고 일부 음식점 주인들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점포를 옮겨야만 했다. 그곳이 바로 ‘전주객사1길’과 ‘전주객사2길’이다. ‘전주객사 3~5길’에 비해 낙후됐던 곳이라 점포 월세가 비교적 저렴했던 탓에 젊은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옮겨오며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이런 과정이 마치 서울의 경리단길과 닮았다. 경리단길도 이태원이 주목받으면서 월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월세 압박에 시달리던 업주들이 인근의 경리단길로 옮기면서 새로운 명소가 됐다. 전주 사람들은 이곳에 카페와 식당이 생겨난 이유가 경리단길과 비슷해서 객사와 경리단길을 합쳐서 객리단길로 부르기 시작했다.

객리단길에는 이색적인 선술집이나 카페, 가정식 식당 등이 영업 중이다. 다양한 메뉴뿐 아니라 독특한 인테리어로 젊은이들이 찾는 인기 거리가 됐다. 전주 젊은이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라는 소문이 난 덕분에 한옥마을에 놀러 왔던 타지의 젊은이들도 밤이면 객리단길로 몰리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거리가 형성됐다.

△발길 줄은 구도심이 예술의 거리로‘웨딩거리’

웨딩거리는 새롭게 터를 잡은 문화·예술인들이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면서 새로운 예술의 거리로 움트고 있다.

전주 웨딩거리에 예술인 창작공간을 비롯해 작은 공방, 갤러리 카페, 개성 있는 식당 등이 잇따라 생기면서 이 일대가 새로운 문화 예술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길목마다 웨딩드레스 전문점과 웨딩촬영 스튜디오 등이 줄지어 서 있는 전주시 중앙동 일대는 과거 전주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였지만 쇠퇴를 거듭하다가 지난 2003년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웨딩거리’로 조성됐다.

하지만 결혼 인구가 줄고 결혼식도 간소화되면서 주춤했던 거리에 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제 가죽·인형·금속공예 공방, 예술 강좌 공간, 문화 행사 기획사 등 문화 관련 공간도 잇따라 들어섰다.

전주 웨딩거리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예술인이 웨딩거리로 모여든 데에는 인근 동문예술거리의 임대료 상승이 크게 작용했다. 관광 명소가 된 한옥마을의 영향으로 옆 구역인 동문거리의 지가도 오르게 됐고 비싼 임대료 등을 감당하지 못한 예술인들이 화방, 전시장 등이 몰려 있는 구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임대료가 저렴한 웨딩거리에 터를 잡은 것. 이곳에 예술인이 모이고 공간이 만들어지니 흥미로운 활동도 생겨났다.

창작품 등의 판매와 예술 활동이 접목된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하고, 거리 활성화를 위해 근방의 상점과 예술인이 참여해 직접 만든 작품 등을 판매하고 그림을 그려주거나 공연이 이뤄지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독특한 공간들과 예술교육을 접목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작가들이 주변 식당이나 카페를 다니면서 예술적 교류 활동도 일어나며 곳곳에서 찾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길을 만드는 이는 사람뿐 ‘사람이 미래’

두 거리 모두 아픔을 갖고 생겨났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거리를 만들었고, 그 거리는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또 다른 이들을 불러왔다. 소외와 아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과거 두 거리의 모습은, 흡사 전북의 현 상황을 연상케 한다. 주요 정책과 사업에서 전북은 해마다 뒷전으로 밀렸고, 자연스럽게 젊은 인재들은 전북을 떠나갔다.

두 거리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일부러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리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 또 다른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 과정에는 사람이 있었다. 거리를 채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거리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거리는 다시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다. ‘길’이라는 ‘공간’은 ‘사람’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인재가 떠나가는 전북이 아닌, 머물고 싶고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전북을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전북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