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스프링고우트(spring goat)’라는 염소떼가 있다. 이들은 매년 봄 우기가 되면 광란의 질주 끝에 절벽에 추락해 집단 자살하는 이상한 동물이다. 염소들도 센치하게 봄을 타거나 무슨 절박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반복되는 염소떼의 집단자살은 참으로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전문 생태학자들의 분석 결과는 의외였다. 염소들의 이 참사는 겨울 건기 내내 굶주리다가 봄철 우기가 되면 연한 새 풀을 서로 먼저 먹기 위해 질주하다 생기는 해프닝이란다. 맨 앞쪽의 염소가 새 풀밭을 향해 먼저 달리면 그다음 무리가 뒤쫓고, 중간 이하는 앞쪽이 달리니 영문도 모른 채 뒤따라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싱싱한 풀을 향유하기는커녕 막상 절벽에 다다르면 달리던 관성으로 집단 추락한다는 것이다.
우매한 동물의 사례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 중 현명한 리더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광란의 질주 중에 한번이라도 멈추어 좌고우면 했더라면? 다시는 과오를 반복치 말자는 역사적 반면교사기 있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그럼 어떠한가? 당장 눈앞의 이권과 부귀영화를 좇아 앞만 보고 달리는 스프링고우트는 아닐까? 공리민복과 인류 공통의 행복보다는 제몫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주의자들은 아닐까? 과거 전제군주 폭군이나 히틀러, 일제 군국주의, 공산 캄보디아 킬링필드처럼 광란의 지도자들에게 미혹되진 않았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과연 옳은 방향으로 제 길을 가고 있는가?
스프링고우트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게 펭귄이다. 지구상의 펭귄은 남극과 뉴질랜드 등에 6속 17종이 있다는데, ‘황제펭귄(emperor penguin)’이 압권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겨울 혹한기에 번식하는 유일한 바닷새이다.
3월이면 황제펭귄 수컷은 100여km나 떨어진 남극내륙 깊숙이 걸어 들어가 암컷이 올 때까지 40일 이상 기다렸다가 짝짓기를 한다. 한 두 개의 알을 약 두 달간 교대로 품는다. 수컷은 발등에 알을 얹은 채 서서 아랫배 쪽 털로 감싸며 2개월 이상 먹지도 않고 새끼만 돌본다. 바다로 간 암컷이 돌아오면 이번엔 수컷이 교대로 한 달쯤 바다로 나가 축난 몸을 추스린다.
새끼는 어미가 반 쯤 씹어 소화시킨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며 솜털이 깃털로 바뀔 때까지는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강강술래처럼 겹겹이 원을 짓는 허들링으로 영하 50~60도의 혹한과 폭설을 견딘다. 바다표범과 큰도둑갈매기 등 천적에도 슬기롭게 대처한다.
새끼 양육이 끝나면 펭귄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새끼를 거느린 펭귄들은 약100여km의 내륙을 뒤뚱뒤뚱 다시 걸어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천적이 두려워 모두 입수를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용사가 퍼스트펭귄이다.
스피링고우트나 펭귄 둘 다 생태계의 최약체 동물이지만 생존방식은 너무 대조적이다. 황제펭귄의 지극한 순애보, 헌신적 새끼양육, 천적 대처능력, 영하 60도 혹한속의 생존, 퍼스트 펭귄의 용감성, 현명한 집단대처 능력 등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이다.
역사상 숱한 지구촌 왕조와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반추해 본다. 우리 역사에도 스프링고우트형과 황제펭귄형 지도자들이 명멸했다. 최근 열강의 신 패권다툼과 북한비핵화를 둘러 싼 엄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스프링고우트가 될 것인가. 황제펭귄이 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과 퍼스트펭귄 지도자의 역량에 달렸다.
황금돼지해 희망찬 새해를 맞아 우리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