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의 약속’이라는 주말드라마가 있다. 막장의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억지스럽지 않게 잡아주는 조연들의 절제된 연기와, 종종 앵글에 수채화처럼 담아낸 서정적인 자연풍경이 양념처럼 맛깔스러워 은근 토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뜬금없이 ‘신과의 약속’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들먹이는 이유는 새해 첫 달인지라 ‘신’이라는 경건함과 ‘약속’이라는 무게감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특히 신년초가 되면 한 해를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다짐을 하고 심지어는 공표하기까지 한다. 작심삼일은 아닐지라도 작심 한두 달인 경우가 대부분이면서도.
필자에게도 아주 오래된 ‘특별한 약속’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여름이었을 게다. 풀을 뜯기러 삐쩍 마른 소를 끌고 들에 나갔는데 이 어린 소가 냅다 뛰어서 연한 풀이 있는 논으로 내달리는 게 아닌가? 논두렁에 심겨진 콩잎이라도 먹어 치울라치면 논 임자의 뿔난 얼굴에다가 아버지의 엄한 꾸중까지 더해질 게 뻔했지만, 고삐를 내던지고 그냥 논두렁 주위에 털퍼덕 주저앉아버렸다. 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당시 마음에 돌덩어리처럼 안고 있는 걱정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병원에 있는 어린 동생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막연한 불안감에 떨며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하나님도 믿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또 착하게 살고 …” 신은 바로 응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연일 죽어나간다는, 살아봤자 불구가 될 거라는 소문만 요란했다. 소년은 절망했다.
신과의 약속을 필자는 오랜 기간 지키지 못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돌연 논두렁이 생각났던 것을 보면 그 엄중한 약속이 마음 한 켠에 체증같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약속이 있은 지 스무 해 되던 즈음 처음으로 주님을 만났고, 지금은 거의 매일 새벽제단을 쌓고 있다.
어린 동생은 신과의 약속이 있은 몇 달 후 정말 기적처럼 살아서 집으로 왔다. 불구도 되지 않았고, 더 건강해져서 말이다.
요즘 서울에서 출향 선후배님들을 만나면서 약속이라는 단어를 새삼 무겁고 따뜻하게 느끼고 있다. 연초에 JB포럼 단톡방에 올라온 박노일 선배님의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소식이 그 중 하나다. 열일곱에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빚까지 져가며 사업하다 이제는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감히 약속을 하고 이미 실행에 옮긴 고향 분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동수회장이 그렇고, 효녀가수 현숙, 군장대 이승우 총장, 이규석 선배, 왕기현 선배, 신상환 후배 등이 그렇다. 지난 달 아너소사이어티 행사장에서 만난 20대의 육육걸즈 박예나 대표의 이야기는 더 감동적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굴하지 않고 열여섯에 창업을 해서 지금은 성공한 청년사업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눔을 끊임 없이 실천하는 기부천사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풀며 살고 있고, 그분들로 인하여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모든 선행의 출발점은 기실 누군가와의 약속이었을 것은 또한 분명하다.
자, ‘신과의 약속’은 아니더라도 뜻 깊고 아름다운 ‘자신과의 약속’을 정월이 가기 전에 한번 정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