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전북인이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정읍시 고부는 조상님의 얼이 면면이 이어져온 나의 본향이다.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부터 오늘날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자주정신과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당긴 세계적인 혁명사다. 정부는 올해부터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로 기리도록 했다.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 한가.
우리 전북은 참으로 자랑거리가 많다. 예로부터 수려한 산과 강, 징게맹게 외배미들(김제만경 확 트인 너른들), 바다가 어우러진 풍요로운 고장으로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곡창(穀倉)이었다. 백제가요 정읍사, 최초의 가사문학 상춘곡을 비롯하여 남원의 춘향가 판소리 등 한국 문학의 근원지요, 풍류와 먹거리 맛의 고장으로도 정평 나 있다. 역사를 훑어보면 임진왜란을 최후까지 막아낸 당찬 전북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전북인으로서 직접 피부로 겪은 굴욕의 역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전북인의 밝은 미래 창조를 위해서 부끄럽지만 굴욕사를 펼쳐보자.
한때 “250만 전북도민 여러분!”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현재는 180여만 명 선도 머지않아 곧 내려앉을 추세다. 이유는 저출산에도 있지만 전국적인 현상이므로 논외로 하고 무엇보다도 청년 인구의 유출이 전북인을 암울하게 한다. 왜 청년들이 고향을 떠날까? 이는 결코 전북인의 굴욕사와 무관치 않다.
인삼의 고장 금산군이 1963년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 전북에서 충남으로 넘어갔다. 당시 실세 중 한사람이 충남 출신이었다.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인 유명 원로 시조시인은 최근 문학 강연에서 자신이 원래 전북 출신인데 본의 아니게 충남 사람이 되었다며 금산이 본적지라고 했다. “그때 빼앗기지 말았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어찌 이 시인뿐이랴? 땅은 물론 인구도 자존심도 졸아들 수밖에 없는 굴욕의 역사다.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지난해 2월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평창동계올림픽이 ‘평창’이 아니라 ‘무주’동계올림픽이었어야 했다. 무주가 평창으로 뒤바뀐 것이다. 1992년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선거 공약이 무주동계올림픽유치였고 ’97년에는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48개국 1406명 참가) 그 때만 해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권은 무주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경쟁 지역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평창이 뛰어들었고 어이없게도 평창이 무주를 제치고 유치신청을 하게 된다. 당시 전북 언론은 “10년 준비한 전북도가 갓 뛰어든 강원도에 ‘업어치기 한판패’를 당했다.”고 자조(自嘲) 섞인 보도를 했다.
그 후로도 LH공사 본사 유치 경쟁에서 경남 진주에 패배, 삼성 새만금 투자 철회, 최근 군산 현대조선소 폐쇄와 아울러 GM 자동차도 부평, 창원 공장은 멀쩡한데 왜 군산 공장만 폐쇄 당했는지 굴욕이다. 또 다시 중앙 정치권에서 국민연금공단도 스멀스멀 넘보고 있다. 굴욕사를 또 쓰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전라감영이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도 전주의 자긍심을 오늘에 되살려 애향심을 다지고 무엇보다도 인물을 키워 전북의 새천년 자랑스러운 영광의 새 역사를 쓰도록 간절히 두 손 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