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 극복

역사는 순환하면서 발전한다. 우리의 역사도 장구한 세월 속에서 아픔과 견디기 힘든 고난도 있었지만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적인 조건이 좋아 배고픔의 역사는 덜했다. 사람도 할아버지 아버지 나의 3대를 합산해서 나눠보면 같다고 한다. 추운 겨울처럼 견디기 힘든 운명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꽃피는 봄이나 추수하는 결실의 계절에 태어난 사람도 있다. 자신의 것만 분리해서 비교해보니 안타깝고 불행해 보이는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도 그렇다. 고려 왕건 때 훈요십조에는 차령산맥과 공주강 이외 사람들은 지세가 배역하니 인재로 등용치 말 것을 주문했다. 호남기피의 근거가 됐지만 전북인들은 머리가 명석해 조선 선조때까지 과거급제자수가 서울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이씨 조선의 본향답게 과거 준비생이 많았고 농경지와 어염이 풍부해 사대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 때 대동세상 건설을 외친 정여립이 모반으로 몰리면서 전북 엘리트 1천여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정여립이 처형되는 등 전북인들이 동서인 싸움(기축옥사)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었다. 정여립난 이후 과거급제자수가 뚝 떨어져 하위권으로 밀린 것만 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머리가 명석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좌절을 맛보자 세상을 한탄하면서 풍류쪽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 전북이 지금같은 맛과 멋의 고장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설이 있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동사상을 정여립이 외쳤기 때문에 그게 동학농민혁명정신으로 이어지면서 3.1만세운동으로 결실을 본 것이다. 전북인은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순국하는 등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민초들이었다. 남원성을 지키려다 순국한 사람들이나 임진왜란 때 이치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주성을 지킨 사례는 그래서 빛나는 역사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고 인내천 사상에 근거한 동학혁명은 풀뿌리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 외세에 의해 수 많은 희생자를 낳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각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민주정치의 토대를 만들었다.

근래 박정희 군사독재정치와 전두환군부독재정치가 이어지면서 전북이 힘들었지만 조상들의 자랑스런 국난극복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린다면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이 어렵고 힘든다고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라 끊없는 도전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이룰 수 있다. 피와 땀의 역사는 절대로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완주 신리 태생인 정여립사건을 모반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들춰내 전북정신의 귀감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간 승자의 편에서 역사가 잘못 기술돼 억울함과 한이 서려 있을 수 있다.

숙종 때 이중환이 전북을 와보지도 않고 펴낸 택리지 속에다 전북인의 성징을 나쁘게 기술했지만 전북인의 핏속에는 저항과 선비의식이 도도히 흐른다. 3.1운동 1백주년을 맞아 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게 전북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