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

김현두 여행작가

2014년 어느 날 오후 친구 녀석이 선물해 준 배낭 하나가 집에 도착했다. 늘 정서적으로 큰 힘을 주던 친구였던 그가 전해 준 그 배낭으로 인해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TV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곳을 친구가 선물해 준 배낭 하나 때문에 떠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 배낭을 받자마자 생각했다. 산티아고에 가야겠는데 싶게 생겼었다. 정말 딱 그랬다. 나는 며칠 후 인터넷으로 스페인 행 티켓을 끊었고, 무작정 떠났으며 그 길을 걸었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의 여유가 좋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를 고맙게도 간직한 채 살 수 있는 그런 내가 좋았다. 누구에게는 그냥 배낭하나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다. 그 거리가 약 800km에 이르는 멀고도 아름다운 길이다. 보통은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대성당까지의 길을 일컫는데, 실제로 성야고보가 지나간 도보순례의 길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이 곳을 걷는 이들은 수많은 마을과 유적, 종교적 유산 등을 만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끝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밀밭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새빨간 양귀비꽃들이 바람결에 몸을 비틀며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아름다운 길 위에서 걸음을 재촉하며 며칠이 흘렀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큰 의미를 두고 떠나지 않으려 했던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내 생각의 잡념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치고 고된 매일의 걸음이 반복되자 이내 생각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가이드북만을 보며 걷고 있는 나를 보았다. 사실 마을은 어디에나 있었고, 나는 오늘 단 하나의 마을 만나고 걸어도 무방했다. 단지 내 생각의 쉼이 그 곳에 있지 못함이 문제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작은 손 글씨 노트에 잠시 펜을 들고서 이러한 생각의 흩어짐을 한 곳에 모아보았다. 강한 줄 알았던 나는 까미노 위에서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 을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 때 부터였다. 내 속도와 내가 가는 길을 가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다. 비단 길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게 하자 다짐하였다. 돌아가면 마주 할 일상까지도 복잡한 세상사도 다 저만치 버려두고 내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러기로 내 마음에 다짐을 하던 날이었다.

모든 것은 길 위의 풍경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벤치와 쓰레기통의 숫자도 달랐고, 피부색도 먹는 것들도 달랐다. 그렇게 내가 살 던 곳으로부터 모든 것을 비교하며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는, 모든 골목과 마을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 약속이 있어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신사역에서 나와 가로수 길을 걷는 중이었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잠시 앉아 쉼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었다. 가게 앞 화려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비싸보이는 자동차들의 풍경보다는 “쉼”이 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지도 듣지도 만난 적도 없는 나에게 부엔까미노(Buen Camino)번역하면 좋은길되세요를 외치는 그 곳의 사람들이 그리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