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앤 가펑클과 확증편향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전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심야 라디오 음악 방송이다. 프로그램 이름이 “별이 빛나는 밤에” 인지 “밤을 잊은 그대인지” 인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 시절 밤마다 청춘들의 심금을 울리는 팝송과 함께 엽서 사연을 맛깔스럽게 들려 주던 남자 디제이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고등학생 때 전주에서 홀로 하숙생활을 할 당시 나의 가장 친한 벗은 팝송이었다. 그렇다고 팝송에 푹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팝송을 들으면 신기하게도 집중력이 더 좋아지고 공부가 더 잘됐다. 돌이켜 보면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사춘기 소년의 외로움과 어수선한 상념들을 달래고 없애 주는 역할을 음악이 해 준 것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업 첫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지목하면서 팝송을 하나 부르라 해서 죠니 호튼(Johny Horton)의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멋들어지게(?) 불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심야 음악방송에는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권투선수(The boxer)”와 같은 미국의 음유시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옥같은 노래들도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 중 “권투선수”라는 곡에는 이러한 가사가 나온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외면해 버리네(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그 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웅얼거리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가사야말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요즘에 우리 모두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警句)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가사를 통해 꼬집은 현상이 바로 확증편향(確證偏向)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한 연구팀에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사형에 찬성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으로 나누었다. 실험참여자들에게 같은 정보를 주고 반응을 관찰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읽었을 때는 자신의 의견을 강화한 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보를 읽었을 때는 그 정보를 무시했다.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상속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례 하나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뒷담화가 경쟁자에 관한 것이라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반응하지만 절친에 관한 뒷담화라면 “그냥 소문이겠지”라고 일축하지 않는가.

최근 패스트 트랙문제를 둘러싸고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되어야할 국회의사당에서 여야간 극한 대치상황이 벌어지는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라도 양쪽 모두 사이먼 앤 가펑클의 “권투선수”를 들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은 어떤지 엉뚱한 제안이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