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숲과 녹시량

‘녹시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녹시량은 눈에 보이는 녹지의 양을 말한다. 이를테면 하얀색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녹시량은 0, 숲을 배경으로 찍으면 녹시량은 100이 된다. 최신현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는 도시의 녹시량은 그 도시가 어떤 환경을 갖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녹시량은 단순히 평면적인 녹지의 양이 많다고 해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 이를테면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차를 타고 다닐 때 눈으로 직접 보이는 녹지 양이 많을 때 녹시량의 가치는 더 커진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동쪽 외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신생도시 ‘알미르’가 있다. 네덜란드의 도시들이 그렇듯이 ‘알미르’ 역시 간척으로 조성됐다. 당초 알미르는 암스테르담과 주변 도시의 인구과밀로 인한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다. 1975년부터 매립공사가 시작되었으니 역사는 일천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 알미르는 세계 도시들이 주목하는 친환경도시가 됐다.

이쯤 되면 이 도시의 발전과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알미르는 ‘보다 인간적인’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앞세웠으며 실수에서 배우고 경험을 쌓아나가며 장단점을 발견해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만들어갔다. 동시 다발적으로 대규모 공간을 건설하지 않고 생물체를 대하듯이 도시의 변화 과정에 따라 개발 속도와 내용을 조절하는 방식은 알미르에 독특한 경관을 선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알미르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 안팎에 놓인 녹지다. 알미르는 바다를 메워 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곧바로 나무부터 심고 숲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척 자체가 자연을 훼손하여 땅을 만드는 것이지만 광활한 간척지에 자연을 들여놓는 지혜가 알미르를 녹시량 높은 친환경도시로 만든 셈이다.

한국의 도시들은 어떤가. 도시 공원과 숲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가 있다. 주민들의 휴식공간마저도 아파트 부지로 내주고 있는 형국이니 도시 숲이나 도시 공원의 존재는 갈수록 미미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침 전주영화제에서 중국 장양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산을 그리다> 를 만났다. 상해 출신 예술가와 그림을 배우는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는 윈난성 외딴 마을이 배경이다.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를 가진 숲과 땅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두 시간, 눈도 마음도 맑아질 수밖에 없었다. 눈부신 ‘초록’의 힘이다. 도시 숲이 더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