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빈집

대문짝 돌쩌귀가 빠져나간 집 마당 가득 망초가 우거진 집 무너진 담장 위로 찔레꽃이 소복한 집 처마 끝에 왕거미가 세 든 집 뒤란 늙은 감나무 아래 빈 의자가 주저앉은 집 비우며 자물쇠도 안 채워둔 집 창호지 찢고 바람이 드나드는 집 두레 밥상에 쥐똥 한 상 잘 차려진 집 이따금 이웃집 개가 짖어 주는 집 담배 한 대참 건너 새 아파트가 즐비한 집 아무도 달력을 넘기지 않는 집 언제까지나 2006년 병술년 9월인 집

마당에 싸리비 자국 정갈하던 집 빨랫줄에 빨래가 고슬고슬 말라가던 집 담장 밑에 봉선화가 곱던 집 바람벽 수건으로 말갛게 얼굴 닦던 집 복 福자 밥사발에 밥 푸고 목숨 壽자 대접에 국 담던 집 형광 등불 아래 달그락 겸상하던 집 칠월 스무사흘 아버지 생신상 차리던 집 반질반질 마루가 윤나던 집 숟가락 통에 숟가락이 많던 집 가나안처럼 약속이 있던 집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 미리 기다리던 집 도란도란 파란 대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