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빨간 공중전화

긴 줄을 섰지요. 시외전화를 신청하고 한두 시간쯤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공중전화기가 점점 사라집니다. 어쩌다 보이는 부스도 찾는 이 하나 없습니다. 우리는 온종일 어딘가로 접속되어 있지요. 몸에서 수십 수백 개의 플러그가 뻗어 나와, 도무지 외로울 틈이 없지요. 그리워할 틈이 없지요. 궁금한 것이라곤 없지요.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모처럼 사람이 보이네요. 지금 저 이는 분명 깜빡 핸드폰을 두고 온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몇백 원 잔돈을 남겼으면 좋겠네요. 핑계 삼아 나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넣고, 뚜- 뚜- 길게 신호 가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은 우체통이 빨간 이유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했지요. 그렇담, 빨간 공중전화 부스는 발효의 시간을 경고한 것이 아닐까요? 술이 익고 장에 맛이 드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그립고 조금은 궁금한, 그래요 발효는 그런 것이겠지요.

전화국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오직 그대를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