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이음'

김종필 동화작가·전북작가회의 회장

오늘도 전라북도 교육청 앞마당을 둘러보았다.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6월 햇살을 담뿍 받은 나무들만 잎을 무성히 키울 뿐 놀이터는 그대로다. 조금 서운하다.

전라북도 교육청 앞마당에는 대형 조형물이 없다. 이처럼 규모가 큰 대한민국 관공서라면 마땅히 있을 법한데도 말이다. 대신 아직도 미완성인 조그만 놀이터가 허기를 채우지 못한 어린애처럼 기운이 빠진 채 자리하고 있다.  

첫봄 하늘 맑은 날, 박성우 시인과 이 놀이터를 함께 거닐며 우리는 큰 감동을 나눴다. 놀이터 이름 공모전 심사를 위해 만난 자리였다.

놀이터의 꽃인 미끄럼틀을 올라가는 길은 휠체어가 혼자서도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올라갈 수 있었으며, 경사대는 가장 사랑하는 이와 손을 다정하게 잡고 내려올 수 있도록 두 개를 나란히 배치했는데 완만하고 길었다.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뻐했다. 설계자의 배려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친구들이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을 하반신 장애인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것 같았다. 엄마 손을 잡고 내려오는 아이, 단짝 친구의 손을 잡고 까르르 미끄러지는 아이를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물망 놀이기구는 섬세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설치한 볼트 캡이 천 개도 넘는 거 같았다. 몸이 불편한 아이도 쉽게 그물에 올라 점점 높은 곳으로 이동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짱짱하게 설계되었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바닥에 그려진 놀이판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함께 놀고 싶었다.    

우리는 크기에 감탄하는 습관을 시나브로 키워왔다. 큰 건물을 지으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상징이라는 이름을 빌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기에 바빴다. 그런 일에는 큰돈이 들어가지만 지갑도 쉽게 열었다.

하지만 교육청 마당은 학교 운동장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주인이어야 한다. 조형물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놀이터를 처음 기획했을 때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몇 명이나 이용한다고 거기에 아까운 돈을 쏟아 붓나, 누가 일부러 시간 내어 여기까지 놀러오나?’ 있을 법한 주장이다.

처음에는 담장이 없는 전라북도 교육청 놀이터를 하루 열 명이 이용하기도 하고 스무 명이 이용하기도 할 것이다.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놀기도 할 것이며, 교육청에 일이 있는 부모님을 따라 왔다가 놀이터에서 잠깐 놀다가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놀 수 있는 이 공간의 가치를 알게 되면 점점 그 숫자는 불어 날 것이다.

우리는 압도할 만한 크기에 보내는 감탄보다는 작은 것에 고개 끄덕거릴 감동이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감동할 일에 지갑 열기를 주저한다면, 손익계산서를 들고 행복의 무게를 잰다면 세상은 얼마나 강퍅할까?

박성우 시인과 나는 놀이터 이름에 쉽게 합의했다. “이음”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고, 엄마와 아이를, 친구와 친구를, 놀이기구와 아이를 까르르 웃음소리로 이어줄 멋진 놀이터다.

놀이터 ‘이음’이 짓다 만 건물처럼 외면 받는 것은 슬픈 일이다. 빨리 완공되어 세상을 이어주는 행복한 공간이 되길 소망한다.

/김종필 동화작가·전북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