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독과 SNS

척독(尺牘)은 편지의 한 종류지만 그중에서도 짧은 편지를 일컫는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척독은 30cm 정도의 크지 않은 나무 토막위에 쓴 편지를 일컬었으나 후에는 종이 편지도 척독으로 분류됐다. 편지 형식의 짧은 글에 진심을 담은 척독은 형식도 자유로워 가까운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적인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척독이 꽃을 피운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다. 적지 않은 문집을 통해 당대의 척독이 전하지만 손으로 쓰는 편지 대신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이 자리 잡은 지금 ‘척독’은 아무래도 낯설다.

전주국립박물관이 기획한 선비문화 특별전에서 ‘척독’을 만났다. 수백 년을 건너 전시실에 놓인 짧은 편지의 주인들은 척독문화의 유행을 이끌었던 조선 후기 선비들이다.

박물관의 자료를 보니 척독을 이끈 이 역시 조선 시대 문인인 허균이다. 그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고척독> 을 받고 자신의 문집에 처음으로 척독을 실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척독은 격식을 중시한 옛 문장의 틀을 벗고 개인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선비들이 그만큼 척독을 일상에서 즐겼다는 증거다.

전주박물관 전시에서는 특히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 이덕무와 박지원의 척독이 눈길을 끈다. 일상을 소재로 자신이 느낀 감정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몇몇 척독을 들여다보니 거기 함축된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지인들에게 건네는 편지는 대체로 정깊은 안부 인사를 담고 있지만 선비로서 지켜야할 삶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간결하고 짧은 문체로 발전해간 ‘척독’은 사적인 편지글이지만 누군가와의 소통하려는 바람이 담겨 있는 통로였다.

그렇고 보니 ‘척독‘은 오늘날의 ’SNS‘ 와도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다. 길지 않은 문장에 담아낸 사적인 생각.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형식이 오늘날의 SNS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기능이나 역할만 비슷할 뿐 그 차이가 크다. 척독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의지의 출구여서인지 문장 하나까지도 헐겁게 쓰지 않았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넘쳐나니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교류의 방식이다 싶다.

오늘날의 SNS도 개인의 품격을 드러내는 말의 성찬이 이어진다. 눈여겨 다시 읽게 되는 좋은 글들도 있으나 화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글들이 쏟아지는 요즈음, 말과 글이 가져오는 폐해가 심상치 않다. 척독의 품격을 다시 불러낼 방법은 없을까.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