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로펌 중 매출액 순위 6위권에 해당하는 법무법인 (유)‘화우’는 최근 화우공익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냈던 고창 출신 이홍훈 전 대법관(73)의 재직을 기념하는 첫 공익논집을 발간했다.
우주일화(宇宙一花)라고 이름지은 이 공익논집은 국내 법조인 중 대표적으로 공익 활동에 앞장서 온 이홍훈 전 대법관의 삶과 인생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법조비리 등으로 인해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등 초유의 파동속에서도 법조계 안팎에서 그는 요즘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주말이면 그는 고향인 고창 흥덕에서 생활하면서 후학들에게 특강을 하는 등 평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지난 21일 고창 석정온천에 있는 한 식당에서 그를 2시간 가량 만나 삶의 궤적을 들어봤다.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화우공익재단 고문,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 평화 법제포럼 대표 등을 맡으면서도 서울 강남에 있는 화우에서 주 3일가량 보내고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4일은 제 고향인 흥덕 신송리에서 아내와 꽃이나 나무를 가꾸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4일 고향에 머물기에 농담으로 주사파(週四派)라고나 할까요.(하하) 8년전부터 고향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 인재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향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는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얼마전 고창북중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는데 주로 나 아닌 공동체의 행복한 삶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현 정부 출범 후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셨는데 요즘 사법농단 등 여러가지를 보면서 느낌이 크게 다를 것 같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대법관 2명이 조사받는 상황을 보면서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마음 아픕니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재판권 독립’이 훼손됐다고 보고 있고요, 누적된 폐해에 대해 국민불신이 분출한 것이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가 성숙하려면 정의롭지 못한 재판에 대해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법관은 체제 보호를 위한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솔직히 시대적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많습니다. 대다수 변호사들 또한 돈이 되는 개별사건에만 관심을 가졌던게 사실이구요, 이젠 법조계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 분출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순창), 서울 고검장을 역임한 화강 최대교(익산), 서울 고등법원장을 지낸 사도 김홍섭 선생(김제) 등 법조 3성을 배출한 고장임에도 그동안 전북 출신 법조인이 별로 많지 않았어요.
“전북 출신 역대 대법관중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헌재소장을 지냈던 이강국, 윤영철(가인 손녀사위)을 비롯해 김지형, 김선수, 김재형, 그리고 저까지 6명으로 기억됩니다.광복직후에는 호남 차별이 별로 없었는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무척 심화됐지요. 법조 영역에서도 앞으로는 지역균형발전에 기반한 인재 육성을 해야만 결국 국가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전북출신 법조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주 만성동에 새롭게 법조타운을 조성해 올 연말에 법원과 검찰이 이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도내 법조인들도 시민들에게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으셨는데 나만 못한 주위의 어려운 이를 되돌아보고 공익활동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닐때 우연히 신문에서 경기고 재학생중 가정 형편 때문에 등록금을 못낸다는 기사를 보고 시골에 계시는 아버님께 쌀 한가마니 정도 되는 등록금 좀 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려 도운게 제 삶의 궤적을 바꾼 것 같습니다. 저도 판사 발령받은뒤 박봉에 자녀가 4명이나 되다보니까 생활이 어려워 사표를 낸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법관을 그만두면 결국 인권보장이라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게되기에 참고 이 자리까지 온 거지요. 학창 시절 친구인 조영래 변호사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제대로 된 재판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수없이 했습니다.
황인철, 홍성우, 이돈명 변호사 등 인권변호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의 법치 실현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
△경쟁이 치열한 우리사회에서는 공익을 돌아보는게 배부른 이의 사치에 가깝게 여기는 풍토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는 일종의 핑계에 불과합니다. 가진게 없지만 짬을 내서 자원봉사 하는건 돈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거죠. 월급 30만원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 다른사람 선물 사고 나면 10원도 안남았다고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쓰면 안됩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전북이 앞으로 더 살기좋은 고장이 되려면 좀 있는 사람이나 지도자들이 혼자 잘 먹고쓰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헌신해야 합니다.”
● 이홍훈 전 대법관은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가 고향인 이홍훈 전 대법관은 흥덕초, 전주북중, 경기고,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77년 서울 영등포지원에서 판사로 시작해 수도권 주요 보직을 거친뒤 제주·수원·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냈다. 2006년부터 6년간 대법관을 지낸 그는 한양대, 전북대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삼수회 회장도 역임했다. 법무법인(유)화우 공익위원회 위원장,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한국신문윤리위원장, 서울대 법인이사장, 대법원 사법발전위원장, 화우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화우공익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국내 법조계에 체계적인‘공익’의 개념을 뿌리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