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를 한지라 하지 못하고…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한지는 없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가 ‘한지’라고 부르고 있던 종이는 ‘한지’가 아니다. 전주는 조선시대 최상품 한지 생산지였다. 그 한지 위에서 맑고 투명한 조선 미술이 꽃을 피웠다. 다양한 기록들이 세계적 유산이 되었다. 그러던 한지가 중국, 일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중국 전통 종이인 쉔지는 2009년,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는 2014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한지의 우수성을 연구 용역을 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 한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첨단 과학시대, 현대 한지의 질은 어떤가. 조선시대의 것과 비교했을 때 물리화학적 특성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전국의 한지 장인 대부분을 참여시켜 조선 정조 시대의 한지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기준이 되었던 전통한지와 재현한 한지를 비교한 결과 전반적으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에 대해 한 한지 전문가는 “이 시대의 장인들이 조선시대 수준의 한지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원형을 되살려 재현한 한지로 정부포상을 수여하려는 계획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전통문화의 원형을 발굴, 조사하여 미래 자원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는 일회성에 그쳤다.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문화수준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한지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서화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이 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지 원형 재현 사업은 늦었지만 고무적이다. 조선시대의 종이를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지난날의 잘못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조선시대 한지 제작 방식을 알지 못한다. 특히 한지의 특성인 질기고 윤기가 있는 수준의 품질은 현재의 장인 기술로 따라가기 힘들다. 한지 수명을 결정짓는 섬유의 배향과 인쇄성을 높이는 평활도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둘째,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 한국 토종인 닥나무가 애기닥과 꾸지나무와의 사이에서 생성된 잡종임은 최근에 밝혀졌다. 닥나무 품종에 관한 기본 연구조차 안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닥나무가 존재했다. 지역 특산 닥나무 품종에 대해 실태 파악도 안 되어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단품종 만이 존재한다. 이 또한 암컷만 있음으로 인해 종이의 품질이 향상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서는 애기닥나무와 꾸지나무를 키워 1대 잡종인 닥나무를 생육 시켜야 한다. 닥 섬유의 연구는 한지 연구의 출발이며 기본이다.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셋째, 정부가 시행한 정책과 사업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정부는 ‘한지’의 본질적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 되어 있고 품질 기준조차 없다. 심지어 K.S 표준조차 터무니없다. 문화재 수리 규정에 전통 한지를 사용하라는 규정조차 없다. 정부 부문에서조차 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러한 무지는 현재까지 진행된 주먹구구식의 한지사업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민간부문에서 전통한지 소비 시장이 무너졌다. 한지에 대한 품질 규정이 없으니 공예용 한지가 주를 이룬다. 이러다보니 전통한지를 구입하려해도 구입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지제조 업체가 1996년 64곳이었던 것이 2018년 현재 21곳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중요무형문화재인 지장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지만 국가에서 종이 한 장 사가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남겼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