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존중 사회

박인규 전 교육공무원

어떤 말에 ‘질’이나 ‘짓’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말하면 특정행동을 폄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갑 질’이나 ‘주제 넘는 짓’등이 그것이다.

얼마 전 어느 재벌가에서 모녀지간에 나온 ‘갑 질’의 형태를 보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놀라고 분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력이나 권력을 겸손하게 사용하지 않고 뻐기듯 남용하고 만용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얼마든지 좋은 말로 지적해도 될 일을 자존감을 짓밟는 언어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상사가 인격으로 부하직원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오직 직급이나 직위만으로 억압하고 누르려는 소인배적인 상사가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직원이 웃어야 고객이 웃는다는 아주 기초적인 철학이 부재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처럼 ‘갑 질’을 하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호존중하면서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안착 되었을 때 모든 부문에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선순환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지적을 해주어서 감사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부하직원이 실수 했을 때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모욕감과 수치심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대화가 단절되고 지시와 명령만 있는 곳에서 무슨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상을 찾아내기 위해서 브레인스토밍 회의형식이 나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욱’하는 것도 습관인 것 같다. 이따금씩 아파트 단지 내에서 관리소 직원과 주민 간에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있는 것을 뉴스로 접하기도 하고 목격도 한다. 그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서로가 내 가족 사랑하듯, 용서하듯 살면 될 텐데 유난히도 ‘갑 질’을 하는 주민이 있다,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며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다그친다.

우리의 미풍양속인 삼강오륜, 향약의 덕목이 그립다. 아직도 종적인 사고에서 일탈하지 못하고 수직적 지위에서 군림하려한다. 사회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데 무엇이든지 자기본위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상호 공존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 자신도, 내 가족도 처지에 따라서는 ‘을’이 될 수도 있다. 항상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말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화의 완성은 곧 행복의 완성이다. 누구든 항상 ‘갑’으로만 살 수 없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가 자리매김 할 때 우리사회는 한층 더 밝아지지 않을까? 경제 강국이 되어도 신뢰가 무너지고 ‘갑 질’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한낱 fantasy(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의심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까지도 의심한다.

바라건대 각기 다른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맛있는 비빔밥이 되듯이 상호존중 하는 사회,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 Salad bowl society(샐러드 볼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인규 전 교육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