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낭패(狼狽)

이희근

‘인생은 항해와 같다’고 한다. 살아가는 일생이 파도를 헤치는 것과 같다는 뜻일 게다. 살다보면 실제 예기치 않은 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며 자주 낭패를 당한다.

9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선물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호텔 앞 백화점을 갔다. 몇 가지 물건을 골라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계산대 문이 닫혔다. 급한 용무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그 문이 열리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우리 뒤에 줄서 있던 프랑스인들은 다 가버리고 우리 일행들만 문 열리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근무시간이 끝나 퇴근한 거였다.

처음 당한 일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입학원서 접수나 채용고시원서를 접수를 할 때 마감시간 안에 접수창구에 도착만 하면 처리해주는 따뜻한 문화가 있는데 칼 같은 퇴근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글로벌 시대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외국 문화와의 갈등, 촌각을 다투는 전자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겪는 어려움, 나이가 들어 건망증 때문에 생기는 당혹감, 예기치 못한 돌발사건 등이 매일 반복되기 때문에 안이하게 처리하다 일어나는 실수 등 우리의 인생은 낭패의 연속이다.

누구나 이처럼 낭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간과하지 않고 그 원인을 잘 규명하고 마무리하면 그것은 낭패 없는 자기 성장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낭패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다. 그러나 같은 낭패를 두 번 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비하는 것도 산 경험이다. 실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많은 사건들도 마무리 뒤에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참고 견디며 살아가노라면 이러한 것들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요즘 국내 여행을 할 때마다 컴퓨터로 차표를 예매한다. 혼잡할 때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주말이나 일요일 어느 때고 필요한 시간에 원하는 좌석에 앉을 수 있어 꼭 예매를 한다. 그런데 어느 주말 갑자기 성남에 사는 큰 딸네 집에 갈 일이 생겨 예매를 하고 버스에 올랐더니 내가 예매한 좌석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지 않은가? 나는 차표를 확인해 봤다. 확실히 예매한 좌석번호가 맞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컴퓨터로 예매했다고 정중히 말하면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더니 그들도 차표를 다시 확인하고 자기들 좌석이란다.

검표원이 와서 이중 발매되었는지도 모른다며 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내 표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예약해서 틀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고 큰 소리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자 표를 또 다시 살펴보더니 일자가 틀렸다고 했다. 나는 차표 시간과 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정확하다고 말했더니 검표원이 다시 살펴보더니 내 행선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세히 보니 행선지가 출발지와 도착지를 잘못 입력하여 성남에서 전주로 오는 표를 예매한 것이었다. 운전기사가 난처해하는 내 모습을 본더니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할테니 우선 빈자리에 앉으라고 아량을 베풀어 주었다.

“당신, 이제 큰 일 났어.” 맨 앞자리에 앉은 후 아내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 나는 힘없이 물었다. “너무 자신만만해 하다가 이런 꼴을 당했지 않아? 당신도 이제 다 됐어.” 나는 정신을 차리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 뒤통수만 만지며 눈을 감았다. 차분하지 못한 내 행동 때문에 생긴 낭패니 어떤 말이라도 참고 견딜 수밖에.

 

* 이희근 수필가는 정읍 출신으로 계간 ‘문학사랑’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산에 올라가 봐야> , <사랑의 유통기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