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 수 없는 한국감정원

김상설 삼창감정평가법인 이사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기관이 아니고, 부동산시장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한국감정원법 제1조).

2016년 동법 제정 당시 감정평가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감정원’이란 명칭을 변경하여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다. 당시 국토교통부장관이 국회답변에서 빠른 시일 내에 명칭을 바꾸기로 약속을 하고 동법이 통과됐었다.

현재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명칭이 한국감정원이니 당연히 감정평가업무를 수행하고, 감정원내의 감정평가사(전체 직원의 약 20~30% 내외에 불과)가 공시업무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아파트, 주택 등의 공시업무도 ‘조사평가’라는 용어대신 ‘조사산정’이란 사전에도 없는 용어를 사용해 감정평가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 수행할 수 있도록 특권이 부여된 실정이다.

1989년 토지공개념의 일환인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일반 감정평가법인의 정립에 따라 한국감정원의 시대적 소명은 다하였었다.

그당시 새로운 부동산회사로의 전환 등 개혁이 필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의 과잉보호에 기대어 무사안일로 지내온 결과가 오늘의 한국감정원의 모습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일개 공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매진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시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적극적인 개혁을 추구했더라면 국토정보, 국유재산관리 등 부동산분야의 공공성이 큰 업무들을 국토정보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다른 기관에 뺏기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고 또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발달한 나라가 아닌가. 주요 업무와 관련도 없는 기관명칭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려놓고, 어떻게 대한민국의 공기업으로서 떳떳할 수 있는가. 한국감정원이란 조직이 감정평가업무를 할 수 없는 기관이란 것을 어느 국민이 알 수 있겠는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개그는 그만 버리고, 하루빨리 조직의 목적과 업무에 걸맞는 명칭을 찾아서 더 이상 눈속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할 것이다.

감정평가를 할 수 없는 기관이 감정평가사를 감독하는 기 현상(감정평가서에 대한 타당성조사를 한국감정원이 수행하고 있음)도 상식과 법치주의의 정신에 위배된다.  

부동산시장 질서유지를 위해 공적인 업무가 필요한 분야는 기획부동산에 의한 투기적 거래, 실거래가신고제에서 저가 신고행위, 아파트 및 상가의 분양권 전매행위 등에 대한 규제라고 생각한다. 부동산투기와 부동산가격의 극심한 양극화는 대다수 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고 있어서 공적 규제의 필요성이 제일 큰 분야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듯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에 대한 미련을 확실하게 던져버리고, 과거 30년간의 무사안일을 거울삼아 용기 있는 결단과 과감한 개혁을 통해 부동산 분야의 새로운 전문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김상설 삼창감정평가법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