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가지런한 신발

댓돌 위에 신발이 가지런합니다. 속내가 시끄러울수록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다지요. IMF 외환위기 시절 어느 중소기업체 사장님, 날마다 빚 독촉에 시달렸답니다. 콩팥이라도 내놓으라는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했답니다. 살기보다 죽기가 쉽겠다 싶어, 날마다 정갈하게 속옷을 갈아입었더랍니다. 어느 거래처에 얼마 또 어디 얼마, 정리한 부채 메모를 품에 지니고 다녔더랍니다. 철부지들이 어디 현관에 신발짝 제대로 벗어두던가요?

길이 끊겨 어쩔 수 없이 강물에 뛰어드는 이들, 가지런히 신발 벗어놓는다지요. 어느 골목을 헤맸고 어떤 짐을 지고 비틀거렸으며 어찌 한숨 몰아쉬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신발, 더는 필요 없을 신발, 다리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는다지요. 화두 하나 붙들고 면벽할 스님도 선방에 들기 전 신발 가지런히 벗어둔다던가요? 자식을 아홉이나 낳으셨던 제 어머님도 산방(産房)에 들 때마다 토방에 고무신 가지런히 벗어두셨다 했지요. 신코가 안쪽을 향한 걸 보니 간단히 끝날 이야기가 아닌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