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병기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 4. 의사 출신 국내 첫 소믈리에 송호석 씨

한국 국제소믈리에협회 이사 거쳐 현재 고문으로 활동중
프렌치 패러독스 관심 갖다가 와인에 올인
신체적 건강도 못지 않게 심리적 건강 챙기는데 와인 동호회 큰 도움
과유불급...제아무리 좋은 술도 과하면 독, 신념 설파도

의사이자 소믈리에인 송호석 한국 국제소믈리에협회 고문이 와인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요즘엔 크고작은 와인 바를 종종 볼 수 있다. 예전엔 부자들만 마시는 고급술이란 이미지가 강했으나 차츰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고 있다. 사실 와인은 외국 술이다. 외국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 있는 술이고 그들의 음식과 맞는 술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크고작은 와인 동호회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전히 서민에겐 좀 접근하기 어려운 술임엔 틀림이 없으나 한번쯤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때마침 와인 전도사로 유명한 ‘의사 출신 국내 첫 소믈리에’ 송호석 박사가 전북인 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한번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송호석(55) 한국 국제소믈리에협회 고문은 익산 여산이 고향이다. 일반외과 전문의인 그는 서울 은평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림대 의대 외래교수, 성균관대 의대 외래 부교수인 그는 마스터 소믈리에로서 경희대·성신여대 등에서 와인강사도 오래 지냈다.

전주 동북초, 해성중, 영생고를 거쳐 원광대 의대에 진학하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 수술을 주로 하는 외과를 전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가부가 확실히 결론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특히 평소 술을 좋아했던 그는 원광대 의대에 진학할때만 해도 세상은 늘 행복으로 가득찬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본과 1학년때 초등교사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하고, 6개월 후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생각지도 않은 시련과 직면하게 된다. 4형제중 장남으로서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막내동생까지 보살피는 등 가장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고난에 마주친 그가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술을 끊고 교회에 다니면서 종교에 깊게 빠져들었고, 또 한편으론 ‘의료 선교사’를 목표로 뛰게된다.

마침내 대학 졸업후 그는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되는데 외과 입국식에서의 작은 사건이 또 인생을 바꾸게 된다. 외과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데 교수, 선배 전문의, 간호사 등이 총 집결한 가운데 진행되던 입국식에서 그는 맥주컵에 가득 따라주던 선배의 술잔을 받지 않고 엎어버린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당시로선 건방지기 짝이 없었으나 어느 누구도 관행을 거부하지 못하던 시절 그의 특이한 행동은 훗날 의료계에 많은 우군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30대 후반의 나이에 서울 은평에 개업한 그는 숱한 어려움에 직면해서인지는 몰라도 혈압이 올라가는 등 건강을 잃게 됐다고 한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뇌출혈로 쓰러지진 어머니로 인해 ‘프렌치 패러독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마저 젊은 나이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와인에 큰 관심을 갖게된다.‘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란 육류 위주의 고지방 식사를 하는 프랑스인의 심장병 발병률이 이유 없이 현저하게 낮은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직전, 프렌치 패러독스가 소개되면서 와인 붐이 일었는데, 그 후 경기침체와 막걸리 열풍에 밀려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꾸준히 와인 소비량이 늘고 있다.

때마침 국내에서도 와인 붐이 일자 그는 보다 전문적으로 와인을 배우기로 하고 관련 서적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게된다.

덕성여대, 경희대, 건국대 등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그는 와인을 단순히 취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관심있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의사이자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내린 결론이 궁금합니다.

“저는 그동안 와인을 좋아하는 의사로서 와인과 건강에 대해 강의를 참 많이 했습니다. 강의 말미에 늘 하는 말은 와인도 술이니 절대 과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와인이 건강에 좋은 술이라도 취하게 마시면 그 폐해는 다른 술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요. 제아무리 좋은 술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측면에서 와인으로 효과를 보려면 하루에 몇병씩 마실만큼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칩니다. 다만 십수년간 술을 단 한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원만한 사회활동을 위해 와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 자체가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에 도움이 되죠.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또다른 기쁨입니다. 와인은 술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예술입니다.좋은 음식과 품위있는 와인이 필수이나 분명한 것은 누구랑 마시는가 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3위일체죠”

△서민들에겐 여전히 와인이 좀 멀게 느껴지는데 생활속에서 좀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와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 하지 말자, 배우려 하지 말고 즐기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꼭 비싼 와인만이 유명한 와인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수많은 와인이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지요. 많은 와인 중에서 자기에게 맞는 저렴한 것을 찾아가는 게 와인의 진미를 아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사실 와인은 하나의 매개일뿐이구요, 이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술을 전혀 하지 않다가 와인을 마시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와인을 통해 알게 된 많은 사회 선후배를 갖게돼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졌고, 전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병원에 오시는 술 좋아하는 환자분들과도 충분히 교감하는게 무척 큰 기쁨이죠”

△의사로서 술, 그중에서도 와인이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그후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즐겼고 다양한 종류의 술이 개발됐고, 지방마다 고유의 술이 발달되어 왔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죠.

유럽연합의 조사에 의하면 18세이상 성인 남성의 90% 이상,여성의 80%이상이 술을 마십니다. 우리나라도 술 소비량이 많은 나라중 하나죠. 그런데 회식문화 중심의 술 권하는 우리 사회는 장점도 많지만 건강을 잃거나 패가망신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와인이 꼭 정답은 아니자만 소믈리에로서 이러한 술문화에 하나의 대안으로 와인을 꼽고 싶습니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과연 와인의 성분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 할지는 의문이나 취하려 마시지 말고 즐기는 술 문화를 만드는 것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