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강둑을 거닐 때나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 만경강을 쳐다본다.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요즈음 같은 복더위 때는 물 반, 사람 반일 정도로 만경강은 더위를 씻어주는 요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놀이를 하는 사람을 구경할 수가 없다. 강물이 깊어 위험한 것도 아닌데 아예 사람조차 접근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강으로서 매력을 잃은 것이다.
무성한 잡초와 한 길이 넘는 갈대밭과 억새풀이 올망졸망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감싸고 있어서 강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럽고 늪이라 부르기엔 어색하다. 어쩌다 불법 낚시꾼이 여러 개의 낚싯대를 늘어뜨리고 강태공이나 된 것처럼 세월을 낚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물오리 몇 마리가 물웅덩이 주인이 되었고 가끔씩 해오라기가 큰 날개를 펴고 순찰을 돌아주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곳곳에 낮은 물막이 보들을 조성하여 흐르는 물을 가두어 놓아서 강이라는 체면을 살려주는데 강바닥 높은 곳이나 둔치는 무성한 풀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야생오리나 들새들이 마음 놓고 보금자리를 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으로 지나다 보면 운 좋게 고라니나 꿩을 볼 수도 있어 눈이 번쩍 띄며 마음이 포근해진다.
다리가 없던 예전엔 강한 빗줄기가 반나절만 내려도 강물이 범람하여 강 건너 사람들은 서둘러서 얕은 여울목으로 건너야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발이 묶일까 봐 서둘러 귀가를 시켜주면 나는 집에는 가지 않고 물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강물이 불어나면 수영에 자신이 있던 나는 겁내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물이 배꼽위에 오르고 두 발이 강바닥에서 뜨게 되면서 몸이 떠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물살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조금씩 둔치 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헤엄을 쳐서 어렵지 않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렇게 여름철엔 여러 차례 홍수가 강변을 휩쓸어 갔고 일 년 내내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서 잡초가 강바닥에 자랄 수 없었다. 하지만 홍수가 자갈과 모래를 실어오니 드넓은 보석 같은 자갈밭, 설원 같은 모래밭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옛 모습이 사라졌을까? 생각해 보니 홍수를 예방하고 토지를 이용하려고 제방을 쌓은 탓이고 아파트와 도로를 건설하려고 모래와 자갈을 마음 놓고 쓸어갔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은 민둥산이 아니라 나무가 울창한 산과 우거진 숲의 들녘이 감질나게 내리는 비는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수 십 년 동안 장마다운 장마, 비다운 비, 눈다운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전국에 큰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도 웬일인지 우리 고장은 일기 예보와는 무관하게 해맑은 날들이다. 그러니 평소에 만수 된 대아저수지를 본 적이 없고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 웬만한 비쯤이야 메마른 산과 들이 갈증 풀기도 아쉬웠다.
초여름부터 이른 가을까지 뛰어들어 물장구치고 헤엄치던 만경강.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도 컥컥댔지만 샘물처럼 생각했고, 다슬기나 새우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만경강이지만, 희미하게 사하라가 생각난다.
* 최정호 수필가는 완주 출생으로 <수필문학> 으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에 등단했다. 시집 <노을 꽃> , <언덕에 오르면> 과 수필집 <외딴 오두막> 을 펴냈다. 외딴> 언덕에> 노을> 문학세계> 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