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전주가 ‘패스트시티’로 퇴보하고 있다.
전주시가 슬로시티를 표방하면서 그 중심에 있는 한옥마을의 전동기 운행조차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는 데 대한 따가운 비판이 나온다. 영업점의 이익에 휘둘려 정작 한옥마을의 소중한 가치인 ‘느림의 미학’이 전동기에 뭉개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으면서 슬로시티의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은 전동기 천국이 된 한옥마을의 퇴보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한 전주 한옥마을.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전동기가 활개치고 있었다. 전동기는 관광객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아찔한 운전을 계속했다. 헬멧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전동장치를 몰고가는 관광객도 보였다.
관광객 김모 씨(31·여)는 “뒤쪽에서 갑자기 전동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면서 “한옥마을을 걷다보면 전동스쿠터 때문에 위험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종전의 두 개의 바퀴나 한 개의 바퀴로 이뤄진 전동스쿠터, 일명 ‘왕발통’ 이용객은 뜸했다. 경찰과 전주시가 제재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대신 가족단위가 탈 수 있는 새로운 네 바퀴의 전동기가 한옥마을에 등장했다. 업자들은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세 바퀴, 네 바퀴의 새로운 전동이동장치를 들여와 더욱 다양한 전동기가 한옥마을을 활보하고 있다.
전주시는 지난해 3월 무분별한 전동장치 운행으로부터 관광객 및 거주민 보행 안전을 보호하겠다며 한옥마을 전동이동장치 운행제한구역 지정 계획을 발표했다. 도로교통법 제6조 통행의 금지 및 제한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1년이 넘은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전주시와 완산경찰이 전동이동장치 운행제한 구역 지정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다.
현재 한옥마을에는 22개 업소가 전동기 300~400여 대를 대여해주고 있다. 1년 전 35곳 600여 대에 비해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동기 운행이 성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전주시가 1년 만에 한옥마을 전동기운행 규제를 포기하고 사실상 허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주시 한옥마을지원과 관계자는 “전동이동장치 운행제한 구역 지정은 자전거까지 포함돼 마을 주민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경찰의 의견을 존중했다”며 “최근에는 안전장구류도 잘 착용하고 전동기 업자들이 자정결의대회를 통해 규칙을 잘 준수해 관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옥마을의 전동이동장치를 이용하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며 “최소한의 안전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인도보행과 속도만 현재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슬로시티 전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전주시가 정작 슬로시티의 시발점인 한옥마을이 전동기 활보로 패스트시티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주시의 슬로시티 정책, 한옥마을 정책의 목표와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따가운 질책도 나오고 있다.
최영기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관광객이 가장 밀집하는 태조로와 은행로 부근은 최소한 안전상의 이유로라도 전동기 운행을 금지시키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