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全州) - 한복(韓服)을 입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은 전주역사(驛舍)는 전북을 대표하는 정거장 답지 않게 작고 아담해서 소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한복을 입은 안내원이 밝은 미소로 전주를 찾아온 승객을 맞는다. 손님을 맞이하는 친절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주변을 보니 편의점과 커피숍의 판매원들도 개량 한복을 입고 분주히 손님을 맞는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아 정감이 어린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의외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청바지에 재킷을 걸친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택시를 타자 친절한 미소로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라며 인사하는 기사님이 선글라스에 개량 한복을 입었는데 구레나룻이 너무 멋져 꼭 영화배우 같다. 전주역을 벗어나 S자로 휘어진 마중길로 들어서니 밝고 화사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명주한복을 입은 두 중년부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화안대소하는 표정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전북대 한옥 정문 앞에 이르자 염색을 한 듯 다양한 한복을 입은 삼삼오오 무리의 젊은 대학생들로 인해 마치 조선시대 향교 앞을 연상시킨다. 택시가 백제대로에서 팔달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거리에는 마고자를 입은 남자와 두루마기 차림의 남자들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양반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순간 이 택시가 나를 조선 시대로 안내하는 거로 착각하고 설렘에 들뜨기 시작한다. “기사 아저씨. 지금 이곳이 어디인가요?” “예, 저기 건물 가운데 한옥 지붕이 보이는 곳이 전주 시청이지요. 두루마기와 마고자 차림의 남자분들은 시청 공무원들이고요. 전주시 공무원들은 한복차림으로 근무하는 걸 큰 자긍심으로 여긴답니다”

이제 나는 오백 년 전의 조선 시대 한가운데로 와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시장 앞에 이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이로 무명 한복차림의 아주머니가 백설기처럼 보이는 떡을 분주히 나른다. 무지개떡과 꿀떡 덕분인지 기름이 반지르르한 무명한복에도 무지개가 아른거리다 사라진다. 시장의 골목길을 바라보다 도착한 한옥마을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다. 조선 시대에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있었던가? 청사초롱 아래 파란 눈의 어린아이부터 금발의 팔순 노인네까지 다양한 한복 차림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좁은 길을 헤쳐 나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서 들어온 경기전 안에도 형형색색의 한복들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베여 있고, 한국적인 정(情)과 전주의 꽃심이 고즈넉하게 담겨있는 옷인데 언제부터 외국인들에게 이처럼 사랑받는 옷이 됐단 말인가?

이곳은 전주-꽃심의 도시이자 양반의 도시요, 한복의 도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민족 고유의 전통 복장을 하는 도시로 알려져, 세계 각 나라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라 시민들의 한복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이 뛰어난 곳이다.

올 추석 한가위-전주는 한복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한복을 입고 전주 시내로 나설 때 전주는 행복한 한복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시는 한복의 일상화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생활이 되도록 뒷받침한다면 한복의 도시, 전주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한복으로 활기가 가득한 곳, 전주가 한복의 도시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날도 머지않았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