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철쭉과 가을 단풍이 물들은 용담댐 주변 도로를 드라이브 하면서 수면위로 비치는 영롱한 햇살을 바라보면 고향산천을 두고 떠나가는 용담댐 수몰민과 국가물관리위원회 출범 소식장면이 겹치면서 서서히 지난 32년 전 일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1987년 대학원시절 여름방학 때 인 것 같다. 평상시 토요일 오후에는 항상 실험실에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일주일 동안 전자계산소의 작업결과를 정리하면 정신이 혼미하고 지루하면서 무엇인가 탈출하고 싶은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교수님이 들어오시면서 오늘은 용담댐 예정지 3곳의 지점에 대한 현장조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실험실 후배들과 함께 트랜싯 레벨측량 기구를 들고 들뜬 마음으로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도착하여 레벨을 보면서 집중하고 있을 때 주변으로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았다. 어떻게 사람한테 돌멩이를 던질 수가 있을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황급히 피해서 현장을 떠났다. 날아오는 돌멩이는 고향산천을 지키려는 수몰민의 마지막 항전 이었던 것 같다. 운일암 반일암을 거쳐서 싸리고개를 넘어 전주로 돌아오는 한여름 밤의 추억이 아직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2001년 11월에 용담댐이 준공되어 2864세대에 1만2616명의 이주민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전북의 서해안개발과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약속하면서 정든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떠나갔다. 용담댐 건설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도로변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 가압장공사로 인한 급수 중단 이라는 것을 가끔씩 보았다. 이는 충남부여 아래 규암에 위치한 금강광역상수도에서 제한급수로 물 공급받던 과거 전주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도교수님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건설국장님 전서”라는 쪽지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다른 쪽에 놓여 있는 보고서에 “수도권으로 이주한 용담댐 이주민의 40%는 도시빈민 노동자로 전략하였다.”라는 내용을 보는 그 순간 왜 이렇게 나 자신이 왜소하고 초라한지 한참을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일제 강점기 35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긴 세월이다. 새만금 사업도 그와 맞먹는 3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전북의 서해안 개발과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염원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향산천 떠나간 수몰민에 대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과 돌아가신 교수님의 유지를 잘 받들지 못한 놈이 위원회에서 목소리만 크게 할 뿐 무슨 노력을 하였단 말 인가? 이러한 회한과 후회가 머릿속을 엄습하여 왔다. 댐 준공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세미나, 포럼, 각종 위원회, 모든 개발계획에서 용담댐- 대청댐의 물 배분 문제는 앞으로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9월 1일 발표한 균형발전지표에 의하면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전라북도가 16위로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이 지표가 뜻하는 바가 무엇 입니까? 용담댐 수몰민에 대한 지켜야 할 약속은 출범한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실행하겠습니까?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역균형개발을 주장했던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말처럼 정말로 시간이 흘러가면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전북도민은 굳게 믿을 수 있을까요?.
고향을 방문하는 용담댐 이주민들은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용담댐호의 물결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한세대가 흘러가버린 전북의 서해안개발과 새만금사업의 성공에 대한 염원을 물어 볼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박영기 전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