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통의 혁신 사상과 호남 정신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전북의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과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전북지방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한다. 그리고 비옥한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남북이 열려 있고 동쪽과 서쪽은 산과 바다로 이어진다.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운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함께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20세기를 전후로 격변기의 전북지역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성리학을 견지하려는 간재학파가 있는가 하면, 반봉건의 기치를 부르짖던 동학 세력이 공존하였다. 전북지방의 매력을 꼽으라면 필자는 사상의 다양성을 꼽겠다.

예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다 보니까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고향인 전북의 좋은 모습이 보인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잘살든 못살든, 지식이 많든 적든, 대체로 수세적이고 보수적이다. 반면에 나의 고향인 전북은 개방성과 보수성이 적당하게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참에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전북이 보여준 근대 이전의 혁신 사상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변혁의 모태이자 미래 전북의 힘이 된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전북의 혁신 운동은 정치와 사상이 결합하는 특징이 있다. 그 중심에 모악산과 금산사가 있다. 8세기에는 김제 만경 출신의 진표율사가 민중을 교화했던 실천적 종교 운동이 있었다. 진표율사는 모악산 아래 금산사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려 부처님이 내려온다는 미륵신앙을 펼쳤다. 어쩌면 이것은 한반도 미륵신앙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10세기 신라 말기에 견훤은 금산사의 미륵신앙에 의지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16세기 조선 중기에는 정여립이 금산사를 거점으로 도참사상을 퍼뜨리고 사회 변혁을 꾀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여립이 주창한 대동사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봉건체제의 근간을 부정하고 공화정을 주창하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그리고 서세동점의 격변기였던 19세기 말엽에는 동학 지도자 전봉준이 나타나서 반외세, 반봉건의 사회 변혁 운동이자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봉건 사회에서 벌어졌던 전북의 대표적인 혁신 운동이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탄압을 받고 실패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전북지역에서 벌어졌던 혁신적인 종교 운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전북지역에서의 종교 운동은 서로 달라도 실천 방식에서 하나같이 혁신적인 측면이 있었다. 동학혁명 이후로 강증산이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목격하고 새로운 종교 운동을 펼쳤다. 그는 새로운 이념에 의지하여 과거의 이념이나 질서를 바로잡겠다며 후천개벽의 틀을 세웠다. 이어서 소태산 박중빈은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며 새로운 종교 운동을 주창하였다. 현재 같은 조계종이라도 금산사는 개혁 불교의 중심에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전북의 천주교는 민주화에 열중하고 생명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개신교회도 다른 지역보다 진보적이고 실천적으로 사회정의에 힘쓰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 일고 있는 한국의 개혁 운동에 전북지역이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나서는 것은 그런 사상적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