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홍제암의 겨울 밤 - 조철헌

오늘밤 가야산 기슭에

나는 한 채의 암자로 누웠네

별자리 지나가는 소리

밤은 깊이깊이 흰 눈을 쌓으며

적막 강산은 벌써 이승이 아니네

 

사바娑婆 세계는 고요로 누워

인간사는 까마득히 자취도 없는

이 허허로운 시공時空

 

밤은 오히려 하이얀 설국雪國

백야白夜의 천국이 가까이에 있네

차가울수록 정중해지는

나그네의 야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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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울수록 정중해’진다는 말 참 좋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우리들의 삶을 세상에 소풍 나왔다고 했던가? 기실은 우리 모두가 세상의 나그네다. 잣눈 내리는 겨울 밤, 사바세계는 이미 선정에 들었고 아직 탈속을 못한 암자 한 채는 이제 막 자리를 보았다.

정수리에 차가운 기운을 들이 부어 몸과 마음을 살뜰히 씻어내고 나면, 내게도 순백의 정신이 들어차리라. -김제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