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더러 ‘아, 이러려고 그랬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여기에 온 거였어.’, ‘이 얘기를 들으려고 오늘 하루가 그랬군.’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될 때. 한 해의 끝자락이 보일 즈음에 다다라서야 그간 나도, 주변도 살뜰히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책이 날카로운 바람 끝처럼 할퀴었기 때문이리라. 시집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에 닿게 된 것은.
시집 속에는 “아직도 오만 가지의 생각들이 모두 지나가야 하루가 저무는”(「낙숫물의 파문-백운천 일기 3」) 한 사내가 산다. “초겨울의 저녁은 그냥 두어도 청승맞은데/ 중년의 사내 혼자서 저녁밥을”(「어느 초겨울의 저녁」) 짓고, “빨래에 대한 시를 쓰려다 그만두고 툇마루로 나와 강물을 바라”(「시를 쓰려다가 그만두다- 백운천 일기 1」)본다. 그이는 “매일매일 순간순간 가슴 떨리는 경이로움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유혹”(「경전을 읽고 난 어느 날씨 좋은 날」)을 느끼고, “세상을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는”(「세상이 경이로운 건」) 존재들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경이로운 존재’와 ‘가여운 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전라도 말 중에 ‘구다보다’라는 표현이 있다. ‘들여다보다’라는 뜻이다. 가여운 나를 보살피는 것도, 경이로운 존재의 출현을 발견하는 일도 응시의 힘에서 비롯된다. 한 존재가 갖는 존엄과 고독을 집요하게 ‘구다보는’ 시인의 눈. “파편처럼 박혀 있던 외로움도 회한도 황홀했던 시간도/ 모두 투명한 침묵이 되어 풀잎에 매달려 있”(「축시丑時의 숲」)음을 감지해 낸 그는 그리하여 “숲길에서 꽃 한 송이에 걸음이 멈추면/ 나는 그 꽃입니다. // 밤하늘 바라보다 별 하나 눈 마주치면/ 나는 그 별입니다.// 세상의 어떤 슬픔 하나 마주쳐도/ 나는 그 슬픔입니다.”(「그렇게 그대가 오면」)하고 노래하는 경지에 이른다. 맹렬한 들끓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그대가 오면 나는 그대일 뿐입니다.” 이렇게 담담히 고백할 순간을 시인과 함께 그려본다.
툇마루에 앉아 강물을 바라본다. 의심도 없이 그대를 좇아온 세월은 아직도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그대의 환영幻影을 노래한 시詩들은 은어의 무리처럼 거침없이 따라 오른다. 이승의 시간이 다하기 전, 그대를 한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이 생각만이 아직도 늙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강의 하구에 이르렀건만 지금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이 허튼 생각만이 남아 가여운 나를 위로한다.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전문)
내 안을 ‘구다보고’ 자꾸만 바깥을 살피게 하는 우리의 허튼 생각이 우리를 위로한다. 마침내 경이로운 ‘그대’를 만나게 할지니.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팔복예술공장 운영지원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시집 <골목의 날씨> 를 발간했다. 골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