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국회가 시계제로 상태다. 여야간 합의처리하기로 한 비쟁점법안 모두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한 후 국회 법안처리가 모두 멈췄다. 민생과 경기회복을 위한 법안마저 당리당략에 묶였다. 협상문을 걷어 닫아버린채 몽니만 부리는 제1야당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국회는 원래 조용할 날이 없다. 다양한 사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기에 늘 시끄러운 곳이고, 그게 어쩌면 당연하다. 동시에 국회는 이런 이해관계들을 모두 모아 서로 합의 가능한 수준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어느 한편의 입장에선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조금씩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국회다.
20대 국회는 우리 정치사에 매우 큰 이정표를 세웠다. 민간인에 대한 국정농단 혐의를 놓고 현역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의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은 우리 사회 ‘개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우리 국회의 개혁 과제는 크게 정치개혁과 사법제도 개혁이었다. 유권자의 표심 그대로의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과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수사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 그 핵심이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본격화 된 정치사법제도 개혁은 올해 초 첫 번째 분수령을 맞았다. 소위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면서 양대 개혁을 위한 관련법안에 대한 국회 처리에는 속도가 붙었다.
허나 여야 합의는 지난한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자유한국당과 이에 동조하는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 때문이었다.
국회가 ‘협상의 장’이 됐던 것은 서로 최소한 협의 가능한 ‘안’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안이라고 내놓은 지역구 270석, 비례대표 폐지안은 위헌소지는 물론이고, 비례성에 있어서는 현행보다 후퇴하는 개악안이었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햅의해 놓고도, 손바닥 뒤집듯 기득권에 집착해서 과거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동물 국회’를 만들었던 올해 봄의 패스트랙 정국 때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의 상황이다. 자유한국당은 여야간 무쟁점 법안에 대한 처리에 대해 합의해 놓고 본회의 개최 불과 30분전에 모든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이다. 사실상 정기국회 내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황당한 것은 자당 소속 의원들이 대표 발의하였거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법안까지도 ‘반대토론’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간 필리버스터는 특정안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19대 국회 때 야당의‘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의 경우는 여당 국회의장이 이를 인정했다. 건강한 국회라면 인정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이번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국회 의사일정 자체를 거부하는 필리버스터였고, 민생법안을 볼모로 한 필리버스터였기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208건의 법안이 본회의 표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유한국당은 이 중 극히 일부안건에 대해서만 반대입장을 밝혀 왔던 터라 이런 자유한국당의 행동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개혁은 당장의 당리당략이 아닌 거대한 민주주의 발전의 흐름 속에서 대승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더 이상 개혁을 가로 막지 말아야 한다. 만약 20대 국회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자유한국당은 민심의 준엄한 평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관영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