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도자기로 본 익산 미륵사지

청자 꽃 모양 사발.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에 건립되어 조선시대인 16세기까지 사찰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륵사지에서는 7세기 초반 중국 당에서 수입된 청자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확인되어 미륵사지 출토 도자기를 보면 미륵사지의 운영시기를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륵사지 출토 도자기는 크게 5개의 단계로 구별할 수 있다. 그 첫째가 백제 무왕대인 7세기에서 10세기 대代로 이때는 중국 당唐의 중국식해무리굽으로 제작된 중국에서 수입된 청자완이 주로 출토되는 단계이고, 두 번째가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제2호가마인 벽돌가마에서 제작된 선해무리굽 단계의 청자완이 미륵사지에서 확인되는 시기이다. 세 번째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중국 당과 오대五代에서 제작된 백자와 청자가 한반도에 수입되어 미륵사지에서 확인되는 단계이다. 네 번째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들이 출토되는 단계이며, 마지막 단계가 조선의 건국에서 16세기 미륵사지가 폐사되는 단계에서 출토되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출토되는 단계이다.

먼저 미륵사지에서는 굽의 폭이 좁고, 높이가 약간 높은 형태를 가진 중국계 해무리굽 완 수십여점이 발굴되었다. 유색은 녹청색, 녹황색, 올리브색을 띠며, 굽의 접지면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유색은 단정하여 전북 진안 도통리 출토 해무리굽 완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단계에서 출토된 미륵사지 출토 해무리굽 청자완은 당대唐代 월요越窯에서 제작된 양질의 청자해무리굽완으로 판단된다.

진안군 도통리 중평마을 가마에서 출토된 선해무리굽과 중국식해무리굽 청자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해무리굽 완보다는 유색의 상태나 굽의 구조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도통리 출토품과 유사한 청자완들이 미륵사지에서 수십점이 확인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중국에서 미륵사지로 수입된 도자기에서 다양한 중국계 도자가 확인된다. 통일신라시대 수입된 도자기로는 해무리굽을 가진 청자와 백자가 있는데, 이중 해무리굽 백자와 청자는 당唐 자기의 특징이다. 태토胎土의 입자가 곱고 밀도가 치밀한데, 특히 청자 사발은 옅은 담황색을 띠는 유약이 입혀져 있고 안쪽 바닥이 밋밋한 곡면曲面을 이루는 등 전형적인 당 월주청자越州靑磁 형태이다.

고려 초기 미륵사에 유입된 자기는 당시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던 질 좋은 백자로 보인다. 정요에서 생산된 백자 사발, 백자 접시와 경덕진景德鎭에서 생산된 백자 꽃 모양 접시, 청백자 접시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도자기류는 9~12세기 무렵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미륵사지 출토 청자는 순청자와 상감청자象嵌靑磁로 구별되며, 퇴화청자堆花靑磁와 철화청자 鐵畵靑磁도 소량 확인된다. 상감청자는 전체 청자 출토량의 10%에도 못 미쳐 적은양이지만 청자의 발생단계에서 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청자들이 출토되었다. 13세기말~14세기 생산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마륵사지에서는 15~16세기 제작된 분청사기와 백자가 소량 확인되는데, 분청사기는 상감과 인화무늬가 새겨진 접시와 대접들이며, 백자는 순백자로 마상배 · 접시 · 대접 · 잔 등의 생활용품 위주이다. 이러한 분청사기와 백자는 양도 소량이며 질적으로도 우수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것은 미륵사지가 15~16세기가 되면 지방의 소규모 사찰로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6세기무렵에 폐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라 하겠다.

미륵사지 출토 도자기는 미륵사지 건립에서 폐사기간까지의 도자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한국 도자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하겠다.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