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작가가 돼 보는 시간이다. 최명희문학관의 최기우 관장이 한 말이다.
필사의 고통·희열을 통해 삶의 아픔을 치유한 사람이 있다. 6개월 만에 소설 <혼불> 7권을 원고지에 옮긴 최민희(74)씨다. 혼불>
“아무런 생각조차 못하고 슬픔에만 젖어 지내던 시간도 차츰차츰 지워지면서 오직 필사에 열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올 봄 사위를 잃은 후 최 씨는 우연히 필사지기 모집 공고를 본 딸의 권유로 소설 <혼불> 필사에 참여하게 됐다. 혼불>
지난 5월부터 참여한 최 씨는 “첫날부터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 <혼불> 을 읽고 원고지에 써내려가는 시간은, 제 삶과 옛 기억을 돌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혼불>
그는 “줄거리 중간 중간에 내가 어릴적에 보고 들으며 지내왔던 것들이 글로 적혀 있었다”며, “어릴적에 종가에 큰일이 있을 때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종가에 가 친척 안어른들과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던 일, 나보다 나아가 좀 많았던 오빠 언니들의 혼례, 새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던 장면들이 <혼불> 에 글로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혼불>
한 달 만에 <혼불> 1권 필사를 끝낸 그는 반년 만에 7권을 글로 옮겼다. 필사하면서 쓴 연필 30자루, 네임펜 50개 등 최 씨가 손에 쥔 필기구 수십 자루가 그의 열정을 한눈에 보여줬다. 함께 참가한 30여 명의 필사지기들도 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느낌이었고, 더 열정적인 최 씨를 보면서 감탄하고 또 긴장했다고. 혼불>
최기우 최명희문학관장 역시 “보통 <혼불> 필사했다고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3년에서 7년 정도 공력을 들이는데, 최민희 선생은 삶의 내공 덕분이었을까 굉장히 빠르게 섭렵하셨다”고 말했다. 혼불>
최민희 씨에게 필사는 과거 삶에 대한 반추일뿐만 아니라 현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손자, 손녀들과 최명희문학관에 와서 최명희 소설가와 <혼불> 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즐겁다”며, “앞으로도 주변에 필사의 매력과 우리말,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혼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