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면 대피 먼저! 패러다임의 전환

홍영근 전북도 소방본부장

내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해 보자. 필자와 비슷한 세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소화기로 직접 화재 진화를 시도하고 119에 신고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것을 두고「패러다임」이라고 한다. 패러다임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를 말하며,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생각의 틀. 즉, 고정관념을 말한다.

화재 이후 소방청에서는「불나면 대피먼저!」라는 화재 초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지 못한 채 아직도 ‘화재발생 시 초기소화 시도 후 119 신고’를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그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일단 불이 났을 때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기본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 알아보자. 1980년대 우리나라 유선전화 보급률은 7.2%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가정에 전화가 없는 시절이다 보니, 불이 났을 때 119에 신고하기 보다는 직접 화재를 진압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소방서나 경찰서에 직접 뛰어가서 신고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신고가 지연되다 보니 당시 시대에는 화재에 따른 피해가 컸다. 그렇기에 평상 시 소방관들이 망루에 올라가서 화재감시를 하기도 했고 ‘화재 시 119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한다.’는 홍보가 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을 거쳐 불이 나면 119에 먼저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 신고가 쉬워졌고, 같은 화재 사건에 대해 수십 건의 신고가 동시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상황의 변화가 있는 만큼 화재에 대한 국민의 행동 요령도 바뀔 때가 왔다. 소화기 한 대만 있어도 충분히 진압 가능한 초기 화재의 경우에는 화재진압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화재를 개인이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들면 화재진화보다는 먼저 대피를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 다르지만, 화재발생 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여 제대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불나면 대피 먼저!’를 실천하는게 중요하며, 미국, 영국 등과 같이 선진 외국에서도 화재 시 대피 우선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도 화재 인명피해를 저감하기 위해 ‘불나면 대피 먼저!’ 패러다임 전환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더불어 화재 시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피난기구인 완강기의 정확한 사용법을 모든 도민이 숙지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홍보 및 교육과 더불어 소방관서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관련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완강기란 건물 외부로 로프, 감속기 등을 설치하여 사용자의 체중에 의해 자동으로 건물 밖으로 연속하여 대피할 수 있는 피난기구로, 완강기의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다면 화재 시 안전한 대피의 절반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중요한 피난기구이다.

완강기는간단한 조작만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피난기구인 만큼 화재 시 당황하여 완강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하고 일상적인 홍보와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전북소방본부는 2020년을 ‘완강기 사용 완전 숙지의 해’로 정하고, 전 도민이 완강기 사용법을 숙지하는 날까지 홍보와 교육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돌아오는 봄에는 가족과 함께 도내 안전체험관과 각 소방서에 설치된 완강기 교육장으로 안전체험 나들이를 하며, 우리 모두 ‘불 나면 대피먼저!’의 고정관념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홍영근 전북도 소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