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치를 때 미리 준비해 간 쪽지나 남의 답안지를 몰래 보고 쓰거나 베끼는 행위로 ‘커닝(Cunn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커닝’은 일본식 영어 발음 ‘간닝구’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본래는 ‘교활한’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시험에서의 부정 행위는 ‘Cheating’인데 여기에는 커닝 뿐 아니라 도박이나 게임 등의 속임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시험이 치러지는 곳이면 빠지지 않는게 커닝이다. 시험 결과에 대한 급부가 큰 시험일 수록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예전에도 과거시험 급제는 곧 신분상승이라는 인생역전을 가져 오는 만큼 커닝 수법이 상상을 초월했다. 답안지 바꿔치기나 대리시험은 예사였다. 붓통과 도포자락, 버선 등에 커닝페이퍼를 넣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콧구멍에 숨겨 가기도 했다. 조선조 숙종실록에는 밖에서 과장(科場)까지 대나무 통이 묻혀 있는 것이 적발됐다는 기록도 있다. 응시자가 끈에 매단 문제를 내보내면 밖에서 답안을 작성해 들여보내려 했던 것이다.
중국 청나라 때 만든 가로 4.5㎝, 세로 3.8㎝, 두께 0.5㎝ 에 불과한 책 9권에 10만자를 담은 커닝페이퍼가 남아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인 미국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에서도 대규모 시험 부정이 적발되기도 했다. 시험 앞에서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커닝 방법도 시대 변화에 따라 진화되고 있다. 과학기술 발달로 첨단 수법이 동원된다. 지난 2004년 시행된 수능에서는 광주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정답을 문자 메시지로 집단 전송한 부정행위가 적발돼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포함 그 해 부정행위로 성적 무효처리된 학생이 무려 314명에 달했다니 그 파장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지난주 프로기사 자격시험인 한국기원 주관 입단대회에서 인공지능(AI)로부터 몰래 훈수를 받아 대국을 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부정 행위자가 붕대를 감은 귀안에 이어폰을 꽂고, 외투 단추에 부착한 소형 카메라를 통해 바둑판을 비추면 외부에서 대기중인 브로커가 이를 보고 AI의 훈수를 전달받아 착점하는 방식이었다. 몇 년전 개봉됐던 영화 ‘신의 한 수’에 나오는 장면이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바둑신동이 외부 고수였지만, 이번에는 AI가 고수 역할을 한 것이 달랐다. 현재 AI의 바둑실력은 프로기사 고수들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최근 은퇴한 이세돌 9단도 AI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국에서 3대1로 패했고, 은퇴직전 국산 AI 프로그램 ‘한돌’과의 대국에서도 2대1로 졌다.
커닝은 원칙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들에게 불이익과 박탈감을 준다는 점에서 공정사회를 해치는 해악이다. 일벌백계로 부정행위의 유혹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