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중사(心中寺)의 겨울

정성수

입동이 지나자 심중사에서 장작 패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사하 마을까지 들려온다. 경내 앞마당에는 버섯을 비롯해서 무청이 수북이 널려 있다. 스님들이 뚫어진 문풍지를 바르고 폭설에 대비해 눈을 치울 싸리비를 만든다. 텃밭에 심은 채소들이 다소곳이 겨울채비를 한다. 심중사의 겨울채비는 소욕지족小慾知足으로 절약과 알뜰한 살림살이다. 그중에서도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드는 게 땔감이다.

겨울 추위와 맞서야 하는 심중사는 난방이 걱정이다. 젊은 스님들은 인근 산 속 고사목을 모으는 일로 땔감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게 모은 땔감은 지게나 몸짐으로 심중사로 옮긴다. 옮긴 나무들을 도끼로 패서 장작이 되면 돌담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객승이나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보살 ? 거사들이 거처해야 할 방마다 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에 땔감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심중사의 겨울은 먹거리 마련도 중요한 일이다. 김장을 할 때는 날자 선택에 신경을 쓴다. 기온이 올라간 날에 김장을 하면 금세 시어지거나 색이 변해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중사에는 소금이나 젓갈류를 과량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손발이 시리도록 추운 날을 택해 김장을 한다.

그 외에도 장류 준비 역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수십여 개의 장독에 담겨 있는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을 일일이 살핀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된장은 겨울 한 철을 이겨내는 보약이나 다름없어 각별하다. 겨울 반찬을 위해서 시래기를 엮어 처마 밑이나 담벼락에 걸어두고 상하지 않도록 바람을 치게 한다. 겨울 심중사는 특별한 반찬거리가 없기 때문에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하기 싫다거나 조금도 지겹지 않다고 큰스님 껄껄 웃으신다.

심중사 뒤꼍에 있는 샘이 얼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도 한다. 샘가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거둬내고 물바가지가 깨지지는 안했는지 살핀다.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한 바가지 고이는 물의 양이지만 물이 고이는 시간만이라고 잡스런 생각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피다. 심중사의 스님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사분율四分律의 ‘춥고 눈이 많은 나라에서는 옷을 덧입는 것을 허락한다’는 부처님의 말씀 따라 겨울철 누비 승복과 회색 털모자들을 꺼내 놓고 손질하는 일도 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겨울 심중사의 백미는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다. 고즈넉하면서도 청아한 풍경소리는 잠들어가는 겨울을 깨운다. ‘댕그랑 댕그랑’ 울음을 가슴에 담으면 이름 모를 산새와 청솔가지를 덮은 눈이 심안心眼으로 다가온다.

심중사의 겨울은 산 짐승들에게도 시련의 계절이다. 눈이 온통 산을 덮으면 먹이를 찾아 멧돼지와 고라니 심지어 살쾡이까지 심중사 주위를 맴돈다. 그러나 한겨울은 스님들이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텃밭을 가꾸거나 잡초를 멜 일도 없고 모기와 싸울 일도 없어 동안거에 들어가 오로지 수행에만 집념할 수 있다.

눈 내리는 심중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천상에서 날아 내리는 수많은 흰나비들이 심중사를 포근히 감싸주는 모습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넘쳐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마음속의 절 심중사는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목에 겨울이 되어 다소곳이 엎디어 있었다.

 

* 정성수 시인은 40여 년 간 초등학교에서 40여년간 봉직하면서 시와 수필을 써왔다. 향촌문학회장을 맡고있으며 시집·동시집·시곡집 등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