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로 꽃을 피운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축제다움과 전주다움을 지킬 수 있을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 1997년 출발해 그간 크고 작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맥을 이어 올해 24회째를 맞았지만,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이하 조직위)가 명칭 및 개최 시기 변경을 추진하면서 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조직위 1차 회의에서는 올해 전주한지문화축제의 방향성을 산업화에 두고 ‘한지산업대전’으로 바꿔 5월에서 9월로 개최 시기를 연기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를 놓고 일부 조직위원들은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보고식 통보”, “공론화 없이 몇몇 소수가 미리 의사 결정” 등 절차적 정당성의 부재를 지적하며 반발했다.
이에 조직위는 ‘전주한지문화축제 - 한지산업대전’으로 명칭을 병기하는 한편, 오는 21일 2차 회의를 열고 개최 시기 등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회의 결과에 따라 전주한지문화축제의 핵심 콘텐츠로 어깨를 함께 해온 ‘전국한지공예대전’이나 ‘전주한지패션대전’과 분리·분산 개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놓고 조직위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이 깊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처음 출발했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축제를 잘 만들면 산업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며 “문화정책은 민간 축제의 자생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무엇보다 전주다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명칭 변경 왜 추진됐나…민간축제 자생력 키워야
이번 명칭 변경 추진은 전주시의회에서 전주한지문화축제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 소속 A의원은 “같은 내용의 반복적인 축제는 소모적인 부분이어서 축제가 산업화로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며 “한지산업축제 등으로 바꿀 것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B의원은 “축제의 체질 개선을 주문한 것이다. 20년이 넘었는데 전북도 우수축제에도 못 들어간다. 전통에 걸맞게 세계화하고 산업화하고 전문화해야 한다”며 개최 시기 변경을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줘보자 하는 것이 핵심이고, 그렇다고 해서 한지문화축제 정체성을 흐리거나 없애자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조직위 회의에 참석했던 김혜미자 선생은 “산업화로 가는 것은 좋다. (명칭과 관련) 제1회 한지산업 박람회냐 아니면 제24회 한지문화축제 안에서 한지문화박람회를 하는 거냐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더라. 그런 고민을 안 했던 거 같다”며 “민간에서 어렵게 시작한 축제인데, 관에서 마음대로 명칭을 바꾸는 일은 안되는 거다”고 밝혔다.
이어 “왜 한지축제가 20여 년 동안 하면서 국가예산 하나도 못 받고 이렇게 퇴보했나 그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조직위원장이나 실무진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다른 문화계 인사는 “명칭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축제는 축제를 통해 산업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태 위원장은 “시의회에서 산업화 쪽을 많이 좀 보충했으면 좋겠다는 요구사항이 있었다”며 “한지와 관련된 민간단체들이 축제를 가져가야, 그것이 진정한 민간 주도다. 집행위원장만 외부에서 임명하는 게 민간주도는 아니다”고 했다. 이어 “올 축제는 공예·패션·산업이 조화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늑장 의견수렴”… 분리·분산개최 되나
전주한지문화축제 명칭 및 개최 시기 변경과 관련, 지난해 12월 전문가 회의를 한 차례 진행했으며, 지난 1월 20일 조직위 회의를 개최했다. 오는 21일 2차 조직위 회의를 앞두고 있지만, 5월 개최를 고려해 준비를 바짝 서둘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선태 위원장은 “지난해 축제도 카운트다운은 2월 말에 했다. 중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국제 심포지엄이나 전국 한지업체도 참가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2차 조직위 회의에서 개최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수가 5월에 하자고 하면 5월에 하는 것이고, 분리개최를 해서 분위기를 새롭게 해보자 하면 그쪽으로 가는 거다. 아직 결정은 안됐다”고 했다.
그러나 B의원은 “공예·패션·산업화 분야별 간담회를 적어도 1월 안에 끝냈어야 하고, 2월에는 로드맵을 만들어서 조율에 들어갔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3월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제까지 늑장을 부렸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한지공예대전이나 전주한지패션대전은 촉박하지만 5월 개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철저한 준비를 이유로 한지산업대전을 9월로 미룬다면, 결국 축제는 사분오열 분리·분산개최될 수밖에 없다.
공예·패션·산업이라는 축제의 3대 축이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분리된다면, 축제 정체성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최 시기와 관련 김혜미자 선생은 “봄에 하고 가을에 하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원주한지문화제와 대한민국한지대전이 분리 개최돼 실패했다. 우리가 그 전철을 또 밟아야 하나”고 토로했다.
전당 팀장 집행위원장 추대 논란
전당 직원 중심의 전주한지문화축제 집행위원회 구성에 대한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조직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설득력이 있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의 전문성이나 격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김선태 위원장 “민간에서 집행위원장을 찾아 선임하려고 했었지만 어려웠다. 전당 팀장이나 팀원들을 보니까 김제 지평선축제 등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있었다”며 “C팀장은 축제 전문가다. 기존에 있는 직원들과 한두 명 더 선발해서 사무국도 꾸려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전주시 B의원은 “전주한지문화축제의 총감독은 20년을 뛰어넘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지역축제 스태프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총감독을 맡기는 일은 한심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