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오리예요.’ 동시 ‘솟대’는 한 줄 담백함으로 시작한다. 하늘을 날거나, 헤엄칠 수 없지만 날개를 활짝 편 오리를 보면 힘찬 비행을 연상케 한다. 모양, 높이가 제 각기인 나무오리의 하늘 향한 기원전부가 어쩌면 첫 연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박예분 시인의 동시는 희망적이고, 따뜻한 격려의 말이 가득하다. ‘괜찮아 잘했어 참 잘했어’ 응원하며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 이어서 ‘못생긴 사과’를 대신해 시인이 들려주는 얘기는 뭉클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과수원을 하는 이웃이 주면서도 미안하게 준 흠집 난 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해님, 바람, 비와 씨름한 상처가 보였다. 작은 감동에도 빨강머리 앤이 다이애나와 손을 맞잡듯, 시인을 만나면 꼭 하고 싶어진다. 아롱이다롱이 서로 다른 덩이 중에 빵 덩이가 되겠다는 화자의 한 마디에 ‘빵’ 터졌다가 마침표는 흐뭇한 미소로 찍었다.
가톨릭 기도문 중 아침기도 끝은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 한다. 저녁기도 처음은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살피고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한다. 문득 그의 동시에서 기도문 같은 깊이를 느꼈다. 동시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면’ 제목자체는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다. 화자의 고백은 순수하고 맑다. 사과하고, 갚기도 하더니 미련처럼 할 일이 많다는 동심에 ‘풋’ 웃음이 난다. 그 또래의 심각함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볼이라고 비비고 싶게 사랑스럽다.
예전에 어쩌나 보려고 조카를 골려줬던 생각이 문득 났다.
“고모 사탕 하나만 줘.” 양손에 쥔 사탕을 하나만 달라고 하니 선뜻 주지는 못하고 무슨 잘못이나 한 냥 빨개진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못 이겨 뺏기다시피 하나를 주고는 조용히 엄마 품에 안겨 소리 없이 울었다. 다시 손에 쥐어주니 금방 눈물을 멈추는 순수함에 눈이 멀 뻔 한 기억이 난다.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 는 타임머신처럼 그때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햇덩이>
일곱 색깔 무지개 같은 색을 지닌 아이들 속에 푹 빠졌다. 결핍에 좌절하지 않고 꿈꾸게 한다. 나는 있지만 없는 이에게 호의 베풀 줄 아는 아이들이 그의 동시에는 가득 하다. 이 동시를 읽는 이들이 흐뭇하고 사랑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시인의 이름을 소재로 한 ‘친구야 네 이름은’ 동시가 있다. 2연 4행에 ‘예분은 꽃가루란다’의 어미는 이름을 지어준 증조할머니가 손녀를 다독이는 손길을 느끼게 만든다. 한때 수줍었던 내 이름에 대한 부끄러움이 치유되는 반전이 있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함으로써 진한 형제애를 보여주는 놀라운 연결에 탄성이 나온다.
이준관 시인은 해설에 ‘어린이들이 이런 시를 읽고 시와 친구가 되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자랐으면’하는 바람에 절로 마음을 같이 한다. 발상이나 표현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 다정함을 주는 동시임에 틀림이 없다.
가끔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하다 내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때 쓴 글이나 그림을 볼 때가 있다. 물끄러미 보다 쓰다듬고 다시 고이 보관한다. 그때 품었을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건져 품는다. 이 동시집을 읽는 모든 이들은 물론 첫 동시집이 된 박예분 시인까지도 희망을 건져 올리는 동시집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 김영주 작가는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했으며,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마키코 언니’를 출품해 등단했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전북작가회의 회원, 동시창작 모임 ‘동시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