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인상적인 선거 구호는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때 민주당이 들고 나왔던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들 수 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던 자유당 이승만 정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에 대해 정곡을 찌른 구호였다.
제2차대전 직후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도조 히데키 총리가 패전과 동시에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한 것과는 크게 달랐다.
패전해서 국민을 능욕과 도탄에 빠뜨린 지도자가 그대로 정권을 유지한 것은 우리의 큰 불행이었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는 망했고 일본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수뇌부로 한 막부정권이 들어섰으나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조선 왕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심지어 백성을 도륙당하게 한 선조는 버젓이 왕 행세를 계속했다. 임란 후 불과 40년 만에 병자호란을 거치며 청나라 말발굽에 전 국토가 유린됐으나 조선은 그대로였고 인조 또한 그대로 왕위를 유지했다.
1956년 5월 실시된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때 집권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 이승만,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내세웠고, 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조병옥으로 맞섰는데 그때 민주당이 내건 구호가 바로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자유당의 부정부패와 잇따른 실정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민주당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선거 직전 신익희의 급서로 정권교체에 실패하게 된다.
꼭 대선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총선 때도 매서운 회초리를 들곤 한다. 지금부터 4년 전 20대 총선 때 도민들은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민주당은 호남 28석 중 단 3석 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는데 전북에서는 익산갑 이춘석, 완주진무장 안호영 단 2명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전북의 총선 판도는 민생당에 회초리를 드는 분위기다. ‘민주당 싹쓸이’ 가능성이 크며 민생당 또는 무소속 후보는 잘해야 한두 석 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도민들 중에는 “싹쓸이는 안된다”며 1~2석 이탈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정가 안팎에서는 현역 중에서 민주당 재공천을 받은 안호영(완주진무장)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당선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현역은 전주병 정동영, 군산 김관영, 정읍고창 유성엽, 남원임순 이용호 정도가 꼽힌다. 현역 중 익산갑 이춘석 의원은 이미 경선에서 탈락했고, 전주갑 김광수, 익산을 조배숙, 김제부안 김종회 등은 실낱 같은 희망을 보면서 민주당 후보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정동영은 김성주와, 김관영은 신영대와 대결을 벌이며 유성엽은 윤준병, 이용호는 이강래와 맞서게 되는데 전국적인 판세나 도내 민주당 지지세 등을 감안하면 대이변이 없는 한 솔직히 단 한 자리도 힘들어 보이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도민 중에는 “수십 년 간 특정 정당 독식 구도를 만든 결과, 지역에 무슨 도움이 됐느냐”는 여론이 상당히 깔려있는 게 사실이고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에 선거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민주당의 싹쓸이 가능성이 클수록 도내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명쾌하게 한 가지 꼭 심어줄 게 있다. 국회의원 배지는 중앙당의 실력자가 주는 게 아니고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달아준다는 사실 말이다. 특정 정당 공천을 받았더라도 그건 보증수표가 아니고, 당선을 결정하는 것은 도민임을 선거 과정에서 분명하게 일깨워 줘야 한다. 그래야만 임기 내내 정당뿐 아니라 지역민들을 대변하면서 뛰게 된다.
/위병기 정치·경제 에디터